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하늘 Feb 02. 2017

영화 <리바이어던>, 무찌를 수 없는 괴물과 싸우다


우리는 참 다행인 세상에 살고 있다. 사냥을 해오지 않아도 밥을 해먹을 수 있으며 맹수를 피해 집을 짓지 않아도 되고 추위를 막아줄 옷을 직접 만들 필요도 없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문자와 규율, 공동체가 생겨났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문화가 꽃피었다. 바야흐로 세상은 문명의 종착역에 도달했으며 더 이상의 혁명은 기대하기 어렵다. 농업 혁명에서부터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거쳐 IT산업의 경쟁적인 신제품 개발까지 세상은 확실히 인류에게 이로운 쪽으로 발전했다. 원시 시대에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돌도끼와 같은 무기로 짐승과 싸워야했다. 당시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는 절대적인 힘의 우세에 있던 짐승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존재는 무엇이며 우리 손에 쥐어진 무기는 무엇일까. 



영화 <리바리어던>의 제목은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던 영국 철학가 토마스 홉스의 대표적 저서에서 비롯되었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욕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혼란을 잠재워줄 강력한 공공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는 절대적 통치 국가를 의미하는‘리바이어던’을 탄생시켰다. 리바이어던은 원래 성서에 등장하는 바다괴물로 입에서는 불길이 뿜어져 나오며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는다고 묘사되어 있다. 영화 <리바이어던>은 부조리한 권력으로 인해 짓밟혀 가는 개인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거대 권력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이 영화는 부당하게 토지를 빼앗긴 미국 시민이 불도저를 개조해 저항했던 ‘킬도저'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며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개인과 국가 권력 문제를 다뤄 국제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배경이자 영화 감독의 본국인 러시아에서는 정부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었다. 이로써 리바이어던은 더 이상 신화 속 상상의 동물이 아닌 실재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평범한 가정의 터전을 빼앗고 별장을 지으려는 부패한 시장과 이에 맞서 집을 지켜내려는 가장인 콜랴가 대립하는 내용이다. 표면적으로는 개인과 권력 간의 갈등을 주로 다루지만 이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배신, 저항과 순응, 무기력과 세속이 무겁게 깔려있다. 이 영화는 급진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이념적인 평가를 넘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며, 우리를 믿음으로 결속시키고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하는 등의 질문 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부조리한 권력에 순응하거나 협조하는 모습은 인간이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건 어려운 일이며 감정적 요소 또한 개입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생겨난 공허함, 세속적인 세계로 진입할 수 없는 낯섬, 자신감과 패기를 소모한 뒤 밀려오는 무력함, 일방적인 소통이 가져다주는 이질감은 권력 앞에서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비인간적일 만큼 이성적이고 강인한 인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거대 권력, 무찌를 수 없는 괴물‘리바이어던’은 사실 전 세계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콜랴가 느끼는 분노와 비참함, 공허함이라는 감정선을 따라 혹은 그의 둘째 부인과 사춘기의 아들, 주인공을 도와주다가 고향으로 돌아 가버린 친구의 시선으로 영화에 몰입한다면 대사로 쓰이지 않은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 한 인간에 불과하고 때론 거대한 파도에 휩쓸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바다 속 괴물과 싸울 무기도 좀처럼 얻기 힘든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손도끼를 들고서 맹수와 싸워야 했던 원시시대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다행히도 지금 우리는 손도끼보다 훨씬 진화한 무기를 갖고 있는데. 이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인간의 조건인 '말'과 '행동'이다. 이 두 가지는 원시인과 우리를 구별해주는 기준이며 원초적인 자신표현의 수단이자 인격의 상징이다. 한나 아렌트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인간은 결코 인간다울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길 꺼려하는 우리들은 서서히 인간의 조건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정의와 신념을 말할 수 있고 이를 실천하는 영웅만이 괴물을 무찌를 것이다. 비록 영화는 주인공 콜랴의 집이 허물어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우리의 신념과 정의는 허물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