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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Nov 04. 2018

라라, 이집트

15화. 달콤한 지루함

관광이 국가경제의 주수입원인 이집트는 관광의 역사가 깊은 나라다. 고대 유물 뿐만 아니라 지중해와 홍해를 끼고 있어 나른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휴양지도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막이지만 건조한 풍경 속에 나일강의 풍요가 있고 지중해와 홍해의 너른 바다가 이집트를 감싸고 있다. 알렉산드로 대왕이 정복하면서 세웠던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이며 시나이 반도에 위치한 다합(Dahab)은 세계 여행자들의 블랙홀인 지역이다. 바닷 속 물고기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발을 들이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마성의 여행지라 일주일 일정이 한달이 된다고. 내가 향한 곳은 샴엘 셰이크다. 다합으로 가는 길 그러니까 카이로와 다합의 중간지점 쯤에 있으며 이곳도 역시 바다를 낀 한가로운 휴양지이다.


다합에서 볼 수 있는 바다세상
안녕 바다
물고기 떼

샴엘 셰이크에서 짧게 휴식을 취하는 이 여정은 여행의 끝을 마무리하는 날 위한 선물이었다. 푹 쉬어야지. 수고했다는 의미로 샴엘 셰이크로 떠났다. 이곳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아무것도 안해도 분명 행복할 것임을 짐작했다. 카이로 버스 정류장에서 7시간을 타고 행선지로 향했다. 숙소에서 저녁밥을 부랴부랴 먹고 또 10차선은 되어보이는 도로를 무단횡단하면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밤 8시. '버스 어디서 타요?' 행인을 붙잡고 물어 물어 버스 주차장을 찾았고 버스에 올라타니 나만 외국인이었다. 버스 안에서 푹 잠을 자고 싶었는데, 잘 수가 없었다. 여권을 보여달라는 신분증 검사만 서너 차례. 중간에 두 차례 정도 버스를 세워 승객들이 전부 내리고 군인들이 짐 검사를 한다. 시나이 반도는 분쟁지역이라 짐검사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총을 든 군인이 앞에 있으니 긴장이 되었다. 자다가 분주한 소리에 깨서 짐을 들고 주차장에 내리면 승객들은 각자의 캐리어나 배낭 지퍼를 열고 한줄로 서서 기다린다. 군인들은 가방에 푹푹 손을 넣어 짐검사를 하고 담배만 퍽퍽 피워대는 이집트 아저씨들은 별 일 아니라며 내게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안전 지대 도착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맘이 놓였다. 이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푹 쉴 일만 남았다. 긴장이 풀리고 이제야 여행의 끝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였기에 자유로웠지만 혼자라는 이유로 늘 긴장되는 건 사실이었다. 방안에 누워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구경한다. 욕심이 많아 무리했던 여행 일정에서 유일무이한 여유다.


푹 자다가 일어나 밤을 걷는다. 선선하게 바람이 분다. 곧게 뻗은 야자수 나무를 따라 해변가로 걸어가 벤치에 누웠다. 파도가 시원하게 부서지며 푸하하하 물소리를 낸다. 해가 질 무렵에는 분홍빛으로 하늘이 물들고 그 색은 곧 보랏빛이 되었다가 이렇게 찐한 남색하늘이 만들어진다. 별이 반짝이길래 사진을 몇 장 찍어보지만 역시 담기지 않는다. 하늘이 맑고 아름답고 이곳에서 친구들이랑 맥주 한캔을 따면 정말 좋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정말 할 거 없고, 지루해서 좋다!     


안녕


5주는 무언가에 취하기 좋은 기간이다. 이보다 더 짧았으면 생각도 미련도 훌훌 털어버렸을텐데. 난 지금 그러지 못한다. 지금 떠돌이 생활에 푹 빠져있다. 매일 내가 선택한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 정해진 일정없이 귀찮게 하는 사람없이 떠다니는 삶에 맛들여서 헤어나올 자신이 없다. 눈물이 찔끔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떠나올 때는 두려움이 컸다. 지금은 그 두려움이 전부 아쉬움으로 변했다. 영화제가 끝났을 때도 이랬다. 허공에서 발버둥치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내가 어딘가에 몰입하고 애정을 갖고 시간을 보냈다면 그 감정은 클 수밖에 없다.                                                                                                                        - 2018.05.12 나의 일기장 -



오늘 아침에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채워 몸을  풀었다. 아직도 온몸이 아리다. 낙타를 탄 이후에는 엉덩이가 아프고 다리도 종종 떨려온다. 일주일만 푹 쉬면 나을 거 같은데, 일단 여기서 이틀동안 편하게 먹고 산책해야겠다. 근데 난 이렇게 한곳에서 가만히 있는 체질이 아니다. 이 지루함을 어쩌면 좋을까 생각하다 수영을 하며 무료함을 달래본다. 이곳에서는 밥을 먹고 자고 수영하는 것이 전부다. 산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닌 걱정많은 친언니의 연락이 쌓여있다. 내 눈으로 보고 듣고 살아본 이집트는 생각보다 안전한데, 인식의 차이는 직접과 간접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야자수


그림자
물 맑은 홍해
푸름
나 : 코끼리 만드는 중이지? / 하우스 키퍼 : 어떻게 알았어? / 나 : ㅋㅋㅋㅋ선글라스 씌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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