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숨은 보물 찾기_이집트 박물관
오늘 할 일. 맛있는 아이스크림 먹기. 박물관 가기. 시타델 가기.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오늘 할 일'을 메모장에 적는다. 대부분은 내가 하고 싶은 서너 가지 일로 구성된다. 카이로의 아침은 정말 고요하다. 오전 11시만 되어도 자동차가 도로를 가득 채우고 이집션들은 요리조리 복잡한 도로를 무단횡단한다. 딱 그 이전 시간까지 카이로의 고요를 즐길 수 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새소리에 눈을 떠 (5층 테라스 밖 나뭇가지에 앉아서 합창을 한다)이집트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 아이스크림 사먹기로 했지. 현지인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맛있는 젤라또를 파는 유명한 디저트 가게를 찾아갔다. 이른 아침이라 기다리는 줄은 없었고 직원들이 진열대에 조각 케이크를 채우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고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요거, 요거, 요거 세 조각만 주세요' 아이스크림를 손에 들고서 결국, 케이크까지 알차게 구매하고 카이로 거리를 걸었다. 다만, 점심 시간이 넘어갈 무렵 열어본 케이크 상자에는 다 녹아서 흐물거리는 케이크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혹자는 이집트 박물관이 피라미드보다 더 인상 깊다고 말한다. 이곳에는 고왕조시대, 중왕조시대, 신왕조시대까지 연대별로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그 양이 방대하다. 찬찬히 모든 전시물을 둘러보려면 9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더 놀라운 점은 전시 유물이 이집트 박물관이 소장한 전체 유물에서 고작 30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70퍼센트는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4대문명의 발상지였던 이집트는 보물의 나라다. 현재도 계속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며 아직 발굴이 진행되지 않은 곳도 많다. 이들에게는 방대한 유물을 보관하는 일이 더욱 골치아픈 일이라고. 현재는 유물의 효율적인 관리 및 전시를 위해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기자 피라미드 근처에 박물관을 새로 설립 중이라고 한다. 물론, 언제 완성될 지는 모른다. 이집트니까!
티켓을 구입하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설 가이드들이 붙는다. 가이드 자격증을 보여주며, '하이라이트만 보여줄게! 나는 정부에서 공인된 가이드야!' 외치며 다가온다. 사뿐히 무시하고 짐 검색대를 지나 전시실을 마주한 순간 ‘우와’하고 탄성이 나왔다. 이집트 여행에서는 항상 믿기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된다. 그저 놀라면서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뿐이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유물이 방치되었다는 말이 적당할 정도로 사방에 보물이 널려있었다. 노터치란 문구가 무색하게 만지는 사람들이 많으며 사설 가이드와 함께 전시장을 구경하는 이들로 박물관은 무척 붐볐다.
유물에 대한 안내 설명은 간략하다. 00 지역에서 발견, 00 무덤 밑에서 발견, 재료 목재. 너무 간략한 설명 뿐이라서 사설 가이드와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이드와 적정한 가이드비에 대한 협상을 해야할 것이다) 모든 걸 놓치지 않고 둘러 보고 싶은데, 유물이 워낙 많아서 3시간을 꼬박 걸으면서 대충 보는 것조차 무리였다. 그래도 몇천 년의 세월을 보낸 유물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건 퍽 기분 좋은 일이다. 채색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벽화, 실물대로 묘사된 조각상들, 반대로 실물과 아주 다르게 변형된 조각상들, 음양각이 뚜렷해서 가까이 다가갈수록 놀라운 돌새김들. 지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미술 수준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박물관 안에서는 책에서만 보던 4대 문명이, 상상속에만 존재할 것 같던 고대 문명의 존재가 뚜렷하게 다가온다.
놀랄 일이 많다는 사실은 언제나 날 즐겁게 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일이 좋아서 원래도 전시를 자주 보러 다닌다. 아름다운 건 대개 좋은 것들만 준다. 신선함, 진지함, 즐거움, 선함. 그래서 '우와'하고 감탄사를 뱉을 수 밖에 없다. 이 날도 몇 번을 '우와'하고 놀랐는지 모른다. 숙소 밖으로 첫발을 내딛었을 때, 카이로의 아침이 너무 좋아서. 클레오 파트라를 닮았다고 말하는 이집션이 우스워서. 딸기랑 망고맛이 섞인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이집트 박물관의 보물들이 실감나지 않게 멋있어서 놀랐다. 매일이 숨은 보물 찾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