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낯선 곳에서 만나는 배려의 맛
택시를 잡고 시타델로 향한다. 시타델은 카이로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성곽으로 십자군을 막기 위해 지어졌다. 카이로는 그 성격에 따라 세 가지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모스크가 세워져있고 중세 이슬람 문화권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이슬라믹 카이로, 초기 기독교의 형태인 콥트교의 문화 유적군이 남아있는 올드 카이로,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모던 카이로 세 지구이다. 카이로의 다채로운 모습은 이집트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데, 그리스로마 지배 시대에는 이집트의 수도가 ‘알렉산드리아’였고 이 때 기독교가 이집트에 유입되었다. 국교가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다. 훗날,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를 지배하면서부터 카이로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다시 종교가 바뀌었다. 그 결과, 현재 이집트 종교는 이슬람교가 90% , 기독교가 10%정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너무나도 다른 종교 문화 유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이러니한 공존이다.
택시를 잡고 기사분께 시타델을 말했으나, 영어는 전혀 못 알아듣는듯 고개만 가로 저었다. 구글로 이미지도 보여주고 ‘캐슬캐슬’ 외쳐보지만 소용이 없다. 서로 못 알아듣는 영어와 아랍어가 오고 가던 와중에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행선지를 물었다. 품 안에 아이를 안고있던 그녀는 나대신 기사분께 아랍어로 시타델을 설명해주고 택시요금을 물어주었다. 이집트에서는 택시를 타기 전에 가격을 미리 흥정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내릴 때, 말도 안 되는 바가지 요금을 물 수도 있다. 그녀도 영어를 유창하는 편은 아녔지만 얼추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듯했다. 나를 보며 허공에 숫자 4와 0(택시비 40 파운드)을 손으로 그려준다. 고마워요.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악수를 하고서 그 자리를 떠났다. 낯선 길을 혼자 헤매야만 하는 여정에서 만나는 사소한 배려는 정말 고맙다. 관광객에게 사기만 치려는 호객꾼만 마주치다가 선의를 갖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힘이 난다. 여행의 재미 중 하나인 배려의 맛이다.
다시 찾은 칸엘 칼릴리 시장. 내게 더 많은 시간이 있었더라면 칸엘 칼릴리 시장을 좀더 찬찬히 오래 둘러볼 것이다. 사고 파는 사람들로 에너지가 넘쳐나는 이곳이 가장 이집트다운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곳에는 차 한잔을 마실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하고 귀금속, 전등, 기념품, 옷, 향신료 등 다양한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길고양이가 많은데, 골목 사이사이 가게 입구마다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번에 새끼 고양이를 만났던 조르디 기념품 가게를 다시 찾고 주변부로 좁게 나있는 샛길로 마구 들어가본다. 오밀조밀 난 좁은 골목길을 들어갈 때마다 탐험가가 된 듯한 설렘을 느낀다. 만나는 고양이마다 주저앉아 사진을 찍으며 ‘안녕'하고 인사했다. 우리나라 고양이보다 얄상하고 눈매가 사나워보이는 이집트 고양이는 쉽게 도망가지도 않고 행인은 빤히 쳐다본다. 이렇게 이쁜 고양이가 사방에 있는 시장이 한국에도 있다면 꽤 자주 갈 것 같다.
호스텔에 도착해서 다시 짐 정리를 했다. 예전엔 가방에 있는 짐을 모조리 꺼냈다가 다시 정리해 넣으면 공간이 생겨났는데 지금은 가방정리가 소용없을 정도로 꽉찼다. 반은 선물, 반은 옷. 지퍼도 살짝 뜯어졌다. 무거운 책은 가방 제일 밑에 두고 그 위로 차곡 차곡 짐을 넣으면서 감정의 크기, 감동의 정도는 시간과 비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난 사람마다 주는 인상도 워낙 다채로운 동시에 순간적이었다. 2주라는 시간 안에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물리적 시간보다 더 오래, 연속적으로 내 안에 존재했다. 나의 선택, 나의 감정, 어떤 사람, 어떤 만남이 내 안에서 계속 반복 재생되었다. 여행의 끝이 다가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서 매일은 24시간의 반복일 뿐이라고 날 다독여보지만 어느 하나 같은 하루가 없다.
멜론 플레이리스트를 틀고서 짐정리를 하는데 아무것도 정리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