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즐거운 나의 집_달달한 사람들
귀국날은 세차게 비가 내렸다.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김포공항 활주로에서 2시간 정도 기다리며 지연되었다. 공항에 내려서는 한국말이 무척 반가웠다. 그건 안도감과도 같았다. 어설픈 영어를 써가며 길을 안 물어도 되고 누군가 날 해치지 않겠지라는 확신에 마음이 놓였다. 터질듯한 배낭을 메고 잘 씻지 못한 행색으로 지하철을 탔다. 누가봐도 여행자 차림에 낙타가 그려진 화려한 바지가 유독 튀어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나.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구의역에 내려 출근길 매일 마셨던 디저트 39로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구의역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자양골목시장입구로 들어섰다. 낡은 연립주택이 모여있고 조금은 으슥한 집 골목길을 보니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걸음도 빨라졌다. 그토록 먹고 싶던 떡볶이, 김밥, 라면 등의 분식을 사들고서 집에 들어갔다. '나왔어어어~' 외치면서 현관문을 열고 나의 룸메이트이자 가족만큼 친한 친구인 수복이를 보자마자, 정확히는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여행중에는 잘 잊고 있었던 익숙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집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 날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야행성에 하고 싶은 건 꼭 해야만하는 성격도 똑닮은 룸메이트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떠들었다. 방엔 달이 떠있고 각자 방 한켠에 누워서 조잘조잘 잠이 오기 직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301호 우리집 이름은 달빛서원이다. 낮보다 밤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살았고 늘 조명이나, 야광달로 밤을 밝혔다. 매일 마주치며 좋든 싫든 하루를 함께 보냈던 동갑내기 친구들이 떨어져 지내는 가족보다 더 보고싶었다.
방바닥에 기념품을 풀었다. 누구는 생각도 욕심도 비우는 여행을 하고 돌아올테지만, 나같이 갖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은 채우는 여행이다. 출발할 때 9키로였던 배낭은 도착할 때 14키로가 되었다. 여행 중간중간 많은 짐을 버렸는데도 가방 무게는 늘어만갔다. 아랍어가 적힌 동화책이나 향초, 고양이 석상, 코끼리 열쇠고리, 작은 타일...다 욕심을 부려서 산 것들이다. 몇 개는 내가 갖고 싶은 욕심에, 나머지는 선물을 주고 싶은 욕심에 가방을 채웠다. 물론, 배낭이 좀더 컸으면 더 많이 들고왔을 것이다.
인도 3주, 이집트 2주. 얼추 35일 간의 여정을 돌아봤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족과 친구들,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많이 끼쳤다. 그들은 인도와 이집트가 얼마나 위험한 나라인지, 각종 사건 사고를 귀뜸해주며 혼자 가는 건 반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날 걱정해주는 말들이었지만, 그럴수록 잘 다녀오고 싶다는 이상한 고집이 생겨 결정을 바꾸기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겪고 나서 말할게'라고 덤덤히 대답하곤 했다. 자주하는 말이었다. 누군가 '사람 혹은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난 겪고 나서 말할게'라고 답한다. 늘 부정적인 예상과는 달리 직접 겪어보니 괜찮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걱정했던 것보다 심심한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개 직접 부딪힐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미리 재단하고 평가하며 말이 많았다.
내가 겪어본 여정은 역시 예상과 달랐다. 위험과 두려움의 크기는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기만 했다. 지금은 모든 걱정이 무상했을 정도로 행복하다는 말과 결국, 떠나길 잘했다는 말을 하고싶다. 위험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는, 위험을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고 불쾌한 경험보다 보통 사람들이 다가와 해준 좋은 말로 좋은 기운을 얻은 적이 훨씬 많았다. 여행지에서도 매일 나처럼 살자고 다짐했을 뿐이었다. 겪지 않고서 부정적인 언어를 열심히 말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말자고.
언제나 두려움보다 응원을 건네는 사람이고 싶다. 언니가 편안한 길을 두고서 중국 유학을 결정했을 때도, 친구가 학업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도. 난 늘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 택한 쪽을 응원했다. 그들이 자기 길을 헤쳐나갈 힘이 있다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알았기 때문이고, 나 또한 흔들릴 때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용기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핸드폰 첫 화면에는 카이로, 조드푸르 등 거쳐온 도시들의 세계 시간이 남아있다. 가끔씩 서울과 다른 도시와의 시차를 생각한다. 서울은 오전 11시, 이집트는 시차가 7시간이니까 거긴 아직 새벽녁이겠구나 하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범위를 넓힌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나, 저쪽의 삶을 가끔 상상해본다.
마지막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귀한 말들. 만나지 못했을 귀한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혜은아, 여행 잘 다녀와. 이번엔 어떤 일이 펼쳐질지 벌써 궁금하고 항상 조심하고 꿈 이룬 거 축하해!
정말 하루뿐이었지만 이렇게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 은!
Hey sweetheart!
Hey was really nice to know sush a beautiful friend like you. Take care of yourself my dear.
Thanks for all.
마이 디어, 혜은씨
예쁜 혜은양~참 잘하셨어요. 건강하게 멋진 여행하고 돌아와줘서 너무 잘했어요.
고마워. 좋은 말들 좋은 기운 느끼게 해줘서.
혜은이가 옆에 있어서 행복해.
I hope to see you again if visited Egypt or when i come to korea.
Open your heart and you will see how amazing people are.
어디서나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너 보조개가 정말 이쁘구나.
멀리 가는 혜은에게. 덥고 심심하고 광활하고 시끄럽고 때론 무섭고 또 때론 아주 행복한 그곳에서 잘 살다오길. 멀리 혼자 떠나는 널 응원해. 많이 비우고 많이 담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