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횟수가 늘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곧 가슴에 와닿는 문장이다) 밑줄을 긋는다. 과거에는 책에 밑줄을 그을 일이 별로 없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문제집 속 풀리지 않는 문제처럼 물음표를 더 많이 표시해놨다. 삶의 아이러니를 원치 않게 목격할수록 소설 속 아이러니가 완전히 이해되었다.
대학시절에는 신입생이던 날 보고 유난히 반겨주던 선배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좀더 사람들에게 딱딱하게 굴었다. 친근하게 먼저 다가가서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고 친한 척 하는 방법은 나중에 서서히 익혀갔다. 무튼 경직되어있던 스무살의 나를 아껴주고 챙겨주려고 했던 선배는 태연하게 나를 반겨주는 동시에 나를 미워했다. 그 선배가 나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를 했다고 건너들은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되었다. 당시에는 화가 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또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인사를 할 게 너무나 싫었다. 그때부터 사람한테는 두 가지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갔다.
나 또한 항상 두 가지 마음을 지닌다. 싫으면서 좋은, 좋으면서 싫은. 더 정확히 말하면 개개인마다 에이포 용지 한장은 거뜬히 채우고도 남을 복잡한 감정을 지닌다. 과거에는 아이러니해서 싫었던 것들이 이제는 아이러니해서 이해가 된다. 우린 그렇게 복잡했고 그렇게 달랐구나. 말이 되는 아이러니라고 어느날의 내 일기장에 밑줄을 다시 긋는다.
쉼표가 없었던 단편소설에 마침표가 찍혔다.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의 연속에서 우리는 표류하고 방황하고 아파했다. 정상이길 싫어하는 선천적인 기질 탓일까. 삶이 역설과 모순으로 이뤄졌음을 이미 알아버린 탓일까. 절정의 연속에서 꽃은 시들지 않았고 별은 언제나 빛났다. 우리는 평범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는 줄거리와 나와 너무나 닮은 주인공에게 고맙다. 환상을 거부했던 이상주의자의 이야기, 현실을 살아가는 비현실주의자의 이야기, 그래서 진실이 거짓이 되는 이야기, 쉼표와 마침표의 이야기.
-어느날의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