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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Mar 08. 2019

<삼삼한 이야기>그 229번째 단추

청량리 스타일

햇살이 좋아서 삼삼한을 씁니다.


1. 청량리에 삽니다


12월에 이사를 왔으니까 얼추 3개월째 청량리에 살고 있다.

아직 이 동네를 잘 모른다. 다만 청량리의 특이사항 몇 가지는 파악했는데, 첫 번째는 어르신들의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이다. 청량리에는 큰 시장이 여럿이다. 경동시장, 청과물 도매시장, 한약재를 파는 약령시장. 시장을 구성하는 상인분들과 주 고객인 아주머니들까지. 이 동네는 어르신들이 많이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집에서 100M쯤 떨어진 도매시장에는 아침 저녁으로 장바구니를 들고온 아주머니, 아저씨들로 명동 뺨치는 풍경을 보여준다.  


두 번째. 다방과 찻집, 콜라텍, 사교댄스 등의 간판이 자주 보인다. 간판만 보아도 짐작이 가지 않는가. 여기는 중장년층의 문화가 주된 코드이다. 종로 일대와 더불어 청량리도 어르신이 문화를 향유하는 동네이다. 가끔씩 동네 카페나 식당에 앉아 그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재미난 점이 많다. 춤을 출 때는 부드럽게 리드를 잘 해야지, 내일은 없어! 오늘만 사는 거야. 이런 얘기들이 들려온다. 청춘에는 나이 제한이 없는 걸로.  


세 번째. 나름 교통의 요지이다. 일단 청량리를 지나는 지하철 노선이 많다. 경의 중앙선, 1호선, 경춘선, 어쩌다 분당선까지. 분당선 배차간격이 좀더 짧아진다면 강북과 강남을 잇는 혁신적인 교통 수단이 될텐데...버스 또한 많다. 청량리 버스 환승센터는 4개의 정류장이 나뉘어져 서울 곳곳으로 뻗어간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다면 나는 청량리에 살지만 이 동네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내게 필요한 곳. 카페나 문화 시설은 청량리에 거의 없다. 3개월 동안 이사를 와서 가장 열심히 한 짓은 아마 맘에 드는 카페를 찾아다닌 일일 것이다. 조금은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이 절실해서 동네 주변에 자주 가는 카페 지도를 따로 만들어놓았을 정도다. 청량리보다는 조금 떨어진 고대나 회기쪽 대학가를 찾아가 맘에 드는 카페를 찜해두었다.   


가장 자주가는 카페.
좋아하는 카페


2. 청량리 스타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량리가 좋아질 때가 있다. 첫 번째로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올빼미족인 나는 밤늦게 귀가할 때가 많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늦은 시간마다 마주하는 건 시장 사람들이다. 도매상인들은 밤새 트럭 가득 실린 청과물 박스를 나른다. 내가 보기엔 이들은 아침도 없고, 저녁도 없는 삶을 사는 듯하다. 집 앞에 있는 양파가게는 매일 밤 양파망을 가게 입구 가득히 쌓아놓는다. 먹고 사는 일. 누구나 한다지만 하루도 쉽지는 않은 일. 나는 매일 상인들의 부지런함을 구경한다. 이건 베짱이인 나에게 좋은 영감이다.


두 번째로 동네를 걷다가 만나는 이상한 조합의 것들이다. 나는 이것들을 '청량리 스타일'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내가 이제껏 보아온 골목 중에 가장 개성이 강하고 그 자체로 멋스러운 곳은 을지로지만, 청량리도 이에 버금간다. 수다쟁이 어르신들이 없는 으슥한 골목길. 이상한 조합의 물건들을 발견할 때마다 청량리가 좋아진다. 오늘은 연체된 도서를 반납하러 도서관에 들렸다. 가는 길마다 매력적인 골목을 만났다. 그들의 골목길에 사람 사는 맛이 쏠쏠히 보인다.



슈퍼마켓
LOVE PEACE
안전 지대
하늘 따먹기
빨강 노랑.



3.  


나는 여름형 인간이라, 햇살이 좋다.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 겨울에는 푸욱 가라앉았다가 봄이 되면 살아난다. 날이 좋아지고 미세먼지가 걷히면 더 많이 이 동네를 돌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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