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에게도 녹록치 않은 육아.
ㅡ영웅도 육아는 힘들다니, 거기에서 오는 위로란.
복덩이 유치원이 방학했다. 기쁨이 방학이 겹치지 않는 한 주 동안 둘이서 뭘 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짠 계획 중 하나는 영화보기였다.
"영화보다가 무서우면 엄마가 꼭 안아줄게. 그럼 무섭지 않을거야."
"알았어. 근데 나가고 싶으면 어떡해?"
"정 무서우면 아쉽지만 나가야지 뭐.."
이런 대화를 나누며 둘이선 처음으로 영화관에 도착했고 언제 시작하느냐는 말을 500번은 들을 끝에 드디어 영화가 시작됐다. 일부러 조명을 켜두는 키즈시네마를 선택한 건 평소 겁이 많은 아이 때문이었다.
인크레더블이라는 영화는 영웅이야기답게 중간중간 긴장되고 떨리는 장면이 많았는데 클라이막스에 이를 때까지 이 녀석이 왠일인지 나가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제야 내심 대견해하며 긴장을 풀고 영화에 몰입했다. 전편도 훌륭했지만 후속작은 더욱 멋졌다.
그러나.
'오,안돼안돼안돼안돼!!'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꽉 쥐게 되던 그 때
복덩이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아아 나가자!!!"
'이런 젠장!!이제 시작인데!!이걸 놓치면 다운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자,자,엄마 손 잡아."
"아니야,나갈거야,나갈거야,"
나는 아이 머리를 품에 당겨 감싸고 버텼다.
"자 이러면 됐지, 잠깐 보지 말고 있어."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아이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고 아무리 키즈시네마라지만 더는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할 수 없어 아이를 뒤로 잡아끌었다.
'나갈까. 아니 그럼 너무 아깝잖아'
나는 뻔한 질문을 또 한 번 했다.
"너 진짜 나갈거야?이거 금방 끝나."
협박도 했다.
"너 나가면 다시 못들어와.이럼 너랑 영화 안 보러온다"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면,
뒤에서서 봤다.
아이는 한 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나가자고 애걸했고 나는 묵묵히 남은 갈증을 해소했다.
영화가 끝나자 아이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영화보겠다고 무섭다는 앨 잡아끌고 협박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돌아온 이성에 접수됐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기껏,
"복덩아.. 엄마가...욕심쟁이네..못나가게해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사과할게.."
라고 했지만 그걸로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아이의 기억은 생각보다 치밀하고 가늠할 수 없는
범위에 있다.
내 5년간의 육아는 대부분 이렇게 강력한 욕구들을 처리하는 미성숙한 자세로 인한 트러블과 그걸 해결하기 위한 정신노동으로 점철되어 있고
아마 그로인해 몇 배는 더 안해도 될 고생을 했다고 본다.
인크레더블2가 더욱 멋진 이유 중 하나만을 꼽으라면 영웅에게조차 만만치 않은 육아의 세계를 그려낸 점이다. 단지 정신적,육체적 소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증명, 행위에 대한 결과, 보상이 단기간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거대한 크루즈의 방향키를 돌리는 영웅조차 쉽게 녹초가 되어버리는 것이 바로 육아인 것이다.
그것만으로 가슴이 후련한, 큰 위로를 얻었다.
비록 위로를 얻는 도중에 또 한 번 위로해야 할 일을 만들긴 했지만.
어찌됐든 나. 참으로 인크레더블한 엄마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