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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놈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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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Apr 15. 2020

우리 아이가 때릴 데가 어딨다고 (2)

반려동물도 나도, 결국 분노의 희생자이자 가해자였다.

  폭우로 신음하던 장마철, 나는 여름감기에 걸렸다. 며칠 동안 열감에 시달리다가 아스피린 몇 알을 먹으면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기운이 들지 않았고,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현기증이 올라와 머리를 쾅쾅 울렸다.



  아픈 와중에도 디디의 실외배변을 위한 산책은 계속 해야 했다. 하루 3번, 꼬박꼬박 디디를 데리고 동네 뒷산으로 갔다. 형편이 안되면 집 옆의 작은 텃밭에 데리고 나가 흙 위에서 배변을 시켰다. 그나마 텃밭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흙바닥 위에서는 디디가 안심하고 배변을 했다. 그 전에 살던 집은 달동네 반지하방이었는데, 길가가 모조리 시멘트로 발라져 있어서 디디가 배변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했다. 노령견이 되기 전까지도 이 산책은 반복되어야 했다.



  디디의 목에 초크체인을 두르고 무거운 쇠리드줄 끝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폭우가 들이쳐서 건물 입구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디디는 발 끝에 물이 닿는 것이 이상스럽게 생각되었는지 나가는 것을 망설였다. 멈칫거리는 디디를 보고 있노라니 속에서 열불이 끓어 오르는 듯 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디디를 발로 툭툭 쳤다.




  “나가자니까.”




  디디는 나를 한번 올려보고 바깥을 바라봤다. 빗방울이 발에 닿을 때마다 앞발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거칠게 디디를 안아올렸다. 품 안에서 보들보들 떨고 있는 디디가 느껴졌다. 많은 비에 겁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내 분노가 느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디디의 떨림이 그치질 않았다.




이 조그마한 존재에게 전해졌던 폭력의 무게가 영원히 씻지못할 죄가 되었다. 나는 참 못된 보호자이다.






  “자, 내려가.”




  디디를 바닥에 내려놓자 누런 콧잔등 위로 빗방울이 톡톡 떨어졌다. 디디의 눈망울에 물기가 촉촉해지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디디와 함께 쓰기 위해 가지고 나온, 파라솔만큼이나 큼지막한 우산을 펼쳐 디디의 등 위로 받쳐들었다. 어차피 사방으로 들이치는 비 때문에 다 젖어버릴테지만, 어쨌든지 간에 최소한의 노력은 기울였다는 안도감을 갖기 위해서였다. 우산을 쓰나마나 디디의 머리통은 물론이고 등허리까지 비에 젖어 누런 털 안에 있는 까만 털이 비쳐졌다. “가자고”라면서 발로 엉덩이를 툭툭 차차, 그제서야 주춤대면서 걷기 시작했다.



  한 바퀴가 지나고 두 바퀴 째. 산책을 나선지 30분이 지났다. 디디는 이 어색한 산책을 견디지 못하고 한 번도 배변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배변을 참으면 분명 다음 산책까지 요의를 버틸텐데, 머리속에서는 아이의 건강보다 자동적으로 인간적인 계산이 굴러갔다.




  ‘이렇게 배변에 실패하면 앞으로 최소 6시간 이상은 소변을 참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분명 방광염에 걸릴 수 밖에 없겠지. 지금 내가 남아있는 잔고가 13,000원 밖에 없는데 방광염을 치료하는데 치료비는 얼마나 들까? 방광염에 한 번 걸린 개는 재발 가능성도 무시 못한다는데 재발하게 되면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 방광염에 걸리면 식이요법도 조절해야 하나? 비싼 캔 사료를 사야 하는거야?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얘 때문에 일을 못하면 뭘 먹고 살아야 하지?’




  갖은 생각들이 올라오니 나를 옭아매고 있는 디디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디디는 “빨리 걸어!”하고 소리를 지르는 나를 향해 힐끗힐끗 뒤돌아보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빨리 싸라고!”라며 디디의 엉덩이를 걷어차자, 공포에 질린 디디가 눈치를 보면서 거의 달음박질을 쳤다. 어느 순간, 빠른 걸음으로 총총대던 디디가 가만히 멈춰섰다. 비가 디디의 등 위로 퍼붓듯이 내렸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더라도, 겁먹은 디디가 한껏 떨고 있는 것이 매우 잘 보였다.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손에 쥐고 있는 리드줄의 강한 흔들림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디디는 이 비를 맞고 추워서 떨고 있기 보다는 내 분노에 무서워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빨리 쑤셔 넣어!”




  국민학생 때였을 것이다. 정확하게 몇 살에 이 말을 들은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이 말을 들어왔던 것은 확실하다. 당시 엄마는 아빠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나와 동생을 기르고 있었다. 오손도손한 가정의 그림을 생각하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고, 그나마도 엄마가 챙겨주는 아침밥을 먹으며 이 정도면 적절히 화목하고 무난한 정도의 가정이 아닐까 하는 위안을 느꼈다. 그래도 밥을 챙겨주는 부모가 있음에 감사하고 살라는 엄마의 가르침은, 내가 아직 버림받지 않음에 감사하라는 궤와 같았으니까. 나는 ‘빨리 쑤셔 넣’으라는 보리밥을 잔뜩 퍼올려서 채 씹기도 전에 목구멍에 ‘쑤셔 넣'곤 했다.




  ‘x같은 년'




  엄마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이름보다 어떠한 욕설이,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속된 용어가, 남녀의 성관계에서 비롯된 비속어 등이 나를 부르는 말이 되었다. 원체 위장이 좋지 않은 편이라 밥알을 꼭꼭 씹어 먹어 속도가 더디게 될 때도, 나 같은 년 때문에 출근이 늦어질 것 같다면서 ‘똥 줏어먹냐'며 머리를 식탁 위로 내려쳤다. 얼굴에 밥알이 덕지덕지 붙은 나에게는 수치심보다 부모를 분노케 한 죄스러움이 더 컸다. 동생은 내 몰골을 낄낄대며 비웃었다. 나는 밥알을 떼지 않고 먹던 밥을 마저 목구멍에 쑤셔넣었다. 누군가의 분노를 키우는 존재.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왔다. 엄마의 분노는 건강하게 해소되지 못한 채, 내 안에서 앙금처럼 남았다. 나는 미성숙한 채, 엄마의 분노를 다른 존재에게 풀었다. 자신의 과거와 같이 연약하고 무능력한 존재에게.







  “빨리 걸어!”




  디디를 쥐고 있던 리드줄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초크체인이 강하게 흔들리자 디디는 깽깽대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더럽게 거기에 왜 누웠어.”




  나는 분노로 이를 갈았다. 디디는 아예 바닥에 엎드려서, 몸 중에서 가장 덜 젖어있던 복부를 물웅덩이에 철푸덕 내려 놓았다. 감기열이 분노와 함께 확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리와.”




  디디의 목줄을 당겼지만 디디는 납작 엎드린 채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꿈뻑꿈뻑 올려다 볼 뿐이었다. 디디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화 내지 마.”


  “너 같으면 화가 안나게 생겼니?”


  “그래도 화 내지 마.”


  “시끄러워!”




  나는 리드줄을 땅바닥에 버리고 뒤돌아갔다.




  “너 맘대로 해.”




  분노로 돌아선 나를 향해 탁탁탁탁 소리가 들렸다. 디디의 발톱이 바닥에 닿는 소리… 돌아보니 디디가 내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비에 쫄딱 젖은 디디가 처량해보였다. 디디가 평소에 내지 않던 끙끙 소리를 내면서 앞발을 나를 향해 뻗었다. 디디에게 다가서자 디디는 그 자리에서 소변을 지렸다. 디디의 따끈한 소변이 내 슬리퍼 사이로 흘러 들어왔다. 디디 빙글 돌아서더니 내 슬리퍼 위에 엉덩이를 기대고 앉았다. 화를 풀라는 표시였다.



  그러자, 내 안에서 양심의 소리인지 무슨 소리인지 모를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에게 맡겨진 생명.
내가 지켜야 할 생명.
사랑없는 사람에게 주어진 사랑의 사명.


  목소리를 듣고 디디를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디디는 내 발등에 머물러서는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작은 디디에게서 내가 보였다. 밥그릇에 얼굴이 짓이겨지던 나의 어린 시절이. 나는 엄마의 분노를 답습하여 반려동물에게 대물림하고 있었다. 변명할 수 없는 수많은 부끄러움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엄마의 분노를 닮아 끔찍한 일을 벌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디디를 안아들었다. 디디의 몸이 아직 따뜻했다. 디디를 티셔츠 안에 넣었다. 감히 이 작은 생명에게 한 짓을 ‘미안해' 정도의 사과의 말로 해결할 수 없었다. 언제라도 디디에게 가할 수 있는 이 폭력을 끊어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위로만 펼쳐져있던 우산을 접었다. 디디만큼, 나도 충분히 비에 젖었다.




 

 이후 심리상담을 받으며 분노를 풀어가는 과정을 가졌다. 그러고나서 아침밥상에서의 기억이 ‘학대'로 정의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화이트 블랭크화 되어버린 한 켠의 어린 시절. 가끔씩 툭툭 터져나오는 분노의 추억들이, 스스로 통제할 힘을 잃었을 때 자신과 가장 닮아있는 존재에게 가장 불건강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없는 사람에게 주어진 사랑의 사명'을 몸소 실천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을대로, 편할대로 사랑하며 강제로 휘두르는 사랑이 아니라, 내게 맡겨진 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히 지켜내는 사랑을 해야겠다면서.



  꼭 그 때뿐만 아니라 여러 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디디는 소심한 개로 고착화되었다. 산책을 나갈 때마다 디디가 눈치를 볼 때는, 일부러 시간 여유를 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둔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그 날의 디디는 ‘괜찮아’라는 말이 얼마나 듣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그 말. 디디도 듣고 싶었던 그 말. 괜찮다, 모두 다 괜찮다. 잘 따라오고 있는지 멀뚱멀뚱 쳐다보는 디디의 눈짓에 나의 어린 시절이 묻어나온다. 내 늙은 개와 나의 상처 위로 봄 햇살이 따사롭게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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