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외 배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침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아니, 아침부터라기 보다는 이미 장마철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내내 비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비 때문에 잔뜩 신경질이 났다.
디디는 실외 배변을 한다. 원래 마당에서 기르던, 그야말로 ‘시골 똥개’여서 그런지 몰라도 실내에서 절대 배변을 하지 않는다. 배변 유도제를 사용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실외에서 배변한 것을 패드에 묻혀서 집 안에 들여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눈물겨운 노력이 무색하게 밖에 나가지 않으면 무조건 참고 본다. 비 오는 날은 배변을 참고만 있는 녀석을 보고 있는 내가 더 괴로울 지경이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전쟁도 이런 전쟁이 따로 없다. 온몸이 쫄딱 젖을 것과 아예 목욕을 시킬 것을 각오하며 산책을 나가야 한다. 우비를 입혔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어설프게 배 털이 축축하게 젖기 마련이었다. 나 같은 견주들이 꽤 있었는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신기한 상품도 사용해 봤다. 리드 줄이 결합된 일종의 우산 같은 상품인데, 하네스의 고리 부분에 체인을 걸어서 강아지가 전체적으로 비를 맞지 않도록 커버해주고 있는 형태였다. 이것도 한 두어 번 사용하다가 바람이 휭 불어서 뒤집히거나, 우산 바깥으로 디디가 더 빨리 걸어가 버리는 바람에 노소용템이 되어 버렸다.
사실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기상 조건 따위는 디디를 키우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교 후 같이 마당에서 햇빛을 쬐거나 뛰어다니거나, 자기가 좋을 대로 아무 데나 배변을 해놓은걸 철부삽으로 퍼올려 흙으로 덮어버리면 거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더라도 어차피 흙바닥에 휩쓸려 자연적으로 청소가 되는 청결한 시스템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새로 이사 간 집에서는 그럴만한 공간적 여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는 어머니 직장의 구내식당에서 근무하시던 분의 건물이었다. 정확히는 그 건물의 2층에는 그 아주머니네가 살고 있었고, 우리는 지하 창고에 월세 15만 원을 주고 거의 얹혀살다시피 했다. 개를 기르는 집인 줄 모르던 주인아주머니는 실외 배변을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나와 디디를 보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셨다.
“개 냄새 안 나게 해라.”
이것이 이사 첫날, 처음 만난 세입자에게 던지는 인사말이었다. 나는 겸연쩍은 미소로 ‘저희 집 개는 실외 배변을 해서 냄새가 나지 않아요.’라고 말씀드렸지만, 휙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등을 보면서 목소리가 수그러들었다. 처음 보는 이에게 경멸스러운 눈빛을 받으니 나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났다. 어쩌다 지하방 계단을 타고 들려오는 ‘가난한 주제에 개를 키우기까지 해?’라는 식의 속닥거림도 내면의 분노를 키우기에 적절했다.
나는 내가 싫었고, 내 처지가 싫었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싫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매일 3번 이상 디디의 실외 배변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더 싫었다. 자기 뜻대로 개가 귀여워 보인다 싶으면 몇 번 예뻐해 주다가 이내 외면하고, 개의 물그릇이 비었는지 밥그릇이 비었는지 알 게 뭐냐는 태도의 가족들.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 것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날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디디를 쓰다듬으면서 ‘네가 죽으면 꼭 화장시켜 줄 거야.’라고 멀쩡한 개를 미리 죽이는 가족들. 물그릇이 비어있는 통에, 목마른 디디가 화장실의 축축한 물기를 빨아먹고 있는 것도 외면하는 가족들. 그들이 외면한 건 나뿐만 아니라 디디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약한 존재인 디디를 감싸야하는 것은 아직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내 몫이었다. 나는 가족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내면의 구멍은 채우지 못하고 또 다른 존재에게 사랑을 채워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영혼은 마르고 말라붙어서 완전히 납작해졌다.
실외 배변을 하는 디디를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것도 당연히 내가 처리해야 할 과제였다. 나는 디디를 사랑하면서도 나를 괴롭히는 디디의 습성에 분노했다. 스스로에 대한 극단적인 생각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의 고역은 그런 나를 더욱 자극했다.
장맛비가 내리던 그 날, 문제는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