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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놈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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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May 06. 2020

이겨낼 수 없는 펫로스 증후군 (4)

깜디의 배를 만졌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복부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깜디는 밤새 울었다. 낮에도 울었고 밤에도 울었다. 새끼 강아지의 울음 때문에 주인집에서 눈치를 줬다. 나와 부모님은 주인집 내외를 만날 때마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마당에서 뛰놀던 디디의 아이들은 우리의 곤란함을 알 턱이 없었다. 울타리를 치거나 어떻게든 정성을 보였으면 될 것을, 우리 가족은 미련할 만큼 무지해서 고개 숙여 사과 인사만 꾸벅 드리고 있었다.



  태어난 날부터 한 달이 지날 때까지 새끼들의 '꾸욱 꾹'거리는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지만, 깜디의 울음소리는 도무지 줄어들지 않았다. 식구들 중에서 가장 예민체였던 나에게는 그 목소리가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그렇지만 작은 새끼가 저렇게 울어 싸는 것이니 별 다른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그냥 참는 것이 답이었다.



  하굣길에 문방구에 들러 귀 안에 틀어넣을 스펀지를 샀다. 명목상은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깜디의 짖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다. 그 자식의 울음소리로부터 단 한순간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스펀지를 틀어 넣으니 깜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성공이었다.




  "꾹! 꾹꾹 꾹!"



  아, 그건 내 착각이었다. 깜디는 그냥 잠깐 쉬었을 뿐이었다. 저 녀석은 목청이 남아나지도 않는 걸까? 신경질적으로 스펀지를 빼내어 책장으로 집어던졌다. 신경쇠약에 걸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오늘 너랑 나랑 이판사판이다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을 향했다.




  "그만 짖으라고!"


  "꾹꾹 꾹꾹 꾹꾹."


  "그러니까 그. 만. 그. 만."


  "꾸욱... 꾹..."




  깜디가 나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작은 혓바닥으로 쪼그려 앉은 무릎을 핥았다. 그런 깜디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는커녕, 손가락 두 마디로 턱을 위로 들어서 입을 닫게 했다. 혀가 쏙 들어가면서 '꾹꾹'대는 울음소리가 목구멍에 맺히는 듯했다.




  "좋아, 깜디. 이제부터 울지 않는 거야. 알았지?"




  이번에는 아이의 콧잔등을 감싸 쥐었다. 깜디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등을 낮추고 엉덩이를 치켜들어 뒷걸음질 쳤다. 까만 꼬리가 바닥을 향해 느리게 휘적거렸다. 겁을 먹은 탓이다.



  아이가 뒷걸음질 치며 손을 빠져나가더니 울음소리를 더 크게 냈다. 귀를 손가락으로 틀어막으며 깜디를 노려봤다. 검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깜디의 목덜미를 집어 들고 마당 한 구석에 있던 빨간 바구니 안에 넣었다.




  "생각의 바구니야. 네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해."




  깜디는 체중으로 바구니를 넘어뜨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돌아왔다. 내 앞으로 돌아온 깜디가 너무나 보기 싫었다. 다시 꾹꾹 거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만하라며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렸다. 아이가 짧은 팔을 파닥이면서 복부를 훤하게 드러냈다.



  아이가 끙끙거리며 혀를 날름거렸다. 뱃가죽이 깜디의 움직임을 따라 종잇장처럼 팔락거렸다. 깜디의 형제들은 모두 젖을 잘 먹어서 배가 빵빵한데, 깜디만 배가 홀쭉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너무 어리니까 디디의 품 안에만 머물게 하려고 멀찌감치 관찰만 했었다. 어미가 있는데 사람 손을 탈까 봐 일부러 스킨십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것이 아이의 장애를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



  아이는 뱃가죽이 등에 깊게 붙어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배를 살살 만져보았다. 아이의 뱃속에서 들어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창자, 그러니까 내장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아이의 배를 쓸어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깜디... 이럴 수가..."




  충격에 휩싸여 아이가 몸을 뒤집는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아이는 한창 발버둥 치더니 시멘트로 발라진 차가운 바닥을 기어 다녔다. 기어서 나에게 오려고 애썼다. 돌이켜보면 깜디는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도 작고 이상하리만큼 움직임이 없었다. 날마다 디디의 품 안에만 머무르려고 하고 어미의 핥짝 인만 받고 있었다. 형제들이 장난치며 물려고 달려들어도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었다. 아까 전에도 깜디는 나를 보고 기어 왔었다.



  그 모든 기억들이 퍼즐처럼 짜 맞춰지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의 장애를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한 달. 아마 한 달 전이었더라면 아이를 살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살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장기가 없는 몸을 한 달이나 버텨내고 있었다. 깜디가 '꾹꾹'거리며 울던 것은 단순한 아이의 울음이 아니라, '아파'하고 외치던 비명소리였다.



  깜디가 기어 오는 동안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이가 살 수 있을까. 이 아이가 살 수 있을까. 장기가 없어도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 달을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살 수 있을까. 아이의 까맣고 보드라운 등을 쓰다듬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안돼, 지금이 마지막일 수는 없어. 지난번에 죽은 밍밍이와 원형이가 떠올랐다. 깜디마저 떠나버리면 벌써 세 번째 죽음이 되어버린다.




  "깜디야, 안돼.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까 지금은 떠나지 말자. 응? 누나가 잘못했어. 누나가 앞으로 잘해줄게. 지금까지 누나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깜디는 천천히 눈꺼풀을 감으려 했다. 깜디의 볼을 매만졌다. 깜디야, 안돼. 아직 나를 한 달 밖에 못 봤잖니. 깜디의 발놀림이 멈추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허덕이던 그 아이는 힘든 몸짓을 그만뒀다. 생의 마지막 몸짓. 나를 향해 꼬리를 미약하게 흔들이던 그것을.



  아이는 죽었다. 이번 죽음은 아무도 예견하지도 못했다. 갑작스러운 깜디의 죽음. 깜디는 얌전히 자는 것만 같았다. 목숨이 끊어진 동물같이 않고 어미 품에서 자던 여느 날과 같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였다. 아빠 다리로 앉아서 다리 사이로 깜디의 여린 몸뚱이를 눕혔다. 아이는 아직 따뜻했다. 축 쳐진 아이의 얼굴을 한 손으로 받쳐 들었다. 장애를 발견한 날 죽어버리다니.



  그 채로 해가 질 때까지 깜디를 안고 있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뭐하냐고 물어보셨는데 '개가 자고 있어서 안고 있어요.'라고 대꾸했다. 혀도 튀어나오지 않았고, 머리도 축 늘어지지 않아서 정말 죽었다고 말하지 않으면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깜디를 안아 들고 자신을 탓하는 시간이 흘렀다.



  해가 지고 나자, 깜디를 잠시 내려놓고 삽을 찾았다. 주인집 몰래 마당 한편에 무덤을 팠다. 깜디를 보내기 전에 디디에게 아이와 이별할 수 있도록 내어주었다. 디디는 킁킁거리며 깜디의 변화를 알아챘다. 디디의 얼굴을 보니 이미 아이가 오랫동안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덤덤하게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형제들에게도 깜디를 보여주고 인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선 깜디를 꼭 안아 들고 묻어줄 곳으로 갔다. 깜디를 보내주기 싫어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살짝 훔쳤다.




  "잘 가. 미안해."




  흙구덩이 안에 신문지로 돌돌 말린 깜디를 눕혔다. 깜디의 몸 위로 흙이 한 번, 두 번 덮였다. 이 조그만 아이를 묻는데 삽질이 1시간이나 걸렸다. 한 번 덮고 멈추고, 또 한 번을 덮고 멈추고 이러기를 수십 번 반복한 까닭이다. 마침내 아이의 몸이 완전히 흙으로 덮였다. 여기에 개가 묻혀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깜디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밍밍이, 원형이, 깜디까지 세 마리의 개들이 스쳐갔다. 아이들은 바람처럼 내게 머물렀다가 민들레 꽃씨처럼 훌쩍 떠나버렸다. 그 이후로 지독한 펫로스 증후군을 겪었다. 아마 아이들을 기억하는 동안 영원히 펫로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우울감과 불면증, 그리고 기면증을 반복하면서 나에겐 생명을 감당할 그 어떤 자격이 없노라고, 이렇게 자신을 괴롭혔다. 두 번째 죽음을 맞으면서 펫로스 증후군이란, 절대로 '이겨낼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번의 죽음에서는 생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빈약함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죄책감을 얻게 되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을 잃은 대가로 아픈 것이 마땅했다. 무지함, 손 쓸 수 없는 무능함, 책임감이 결여된 보호자라는 사실이 나를 영원한 감옥 속에 밀어 넣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펫로스 증후군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직도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을 두드리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때때로 그 죄책감만큼이나 지금 남아있는 내 아이, 디디에게 과하게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모두 다 떠나간 아이들에 대한 보상심리이지만, 무지개다리 너머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그 아이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안아주며 말해주고 싶다.




얘들아, 누나가 많이 미안해. 
너희는 내 최고의 사랑이야. 
다시 볼 때까지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해.
누나 무서운 거 알지?
아프면 혼내줄 거야.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기다려야 해.
셋이서 잘 지내고 있을 거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렴.
너희는 모두 내 아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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