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놈의 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단우 May 03. 2020

이겨낼 수 없는 펫로스 증후군 (3)

세 번째 죽음은 장애를 가진 강아지에게서였다.

  우리 개가 이상했다. 디디는 자꾸 생식기를 핥았다. 디디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생식기가 붉게 오르고 비릿하고 난생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났다. 며칠 후에는 생식기에서 붉은 액체가 비쳤다. 디디가 월경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제 디디는 어린 강아지가 아니라 어엿한 성견이 되었다. 월경이 시작되면서 개장에 깔아둔 헌 내복바지에 생리혈이 묻었다. 어차피 방 안에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실외 철장에서 기르는 것이라서 그녀의 월경 증세에 대해 우리가 무언가 조치를 할 필요성은 못느꼈다.



  하지만 내가 개의 월경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있었다. 월경이 시작되거나 끝날 즈음에 발정기라는 것이 있어서 밖에서 기르는 발바리나 산책을 나가는 실내견들이 가출을 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동물병원도 없었고,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1km 가까이 떨어진 동사무소를 찾아가 공용PC를 사용해야 했기에 그런 정보를 알 턱이 없었다. 무지하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순박한 마을 어른들은 어디서 발정난 개들이 짝짓기를 하고 배가 불러오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고, 미역국을 만들어 어미와 새끼들에게 먹이곤 했다. 그러다보니 누구네 집 개가 집을 나가서 저 마을 초입에 사는 김씨네 집 개랑 새끼를 만들어왔다느니 하는건 소소한 동네 소식의 축에도 끼지 못했다.



  디디가 첫 월경을 시작하고, 그 기간이 다 끝났을 때였다. 이전부터 디디를 꽤 좋아하던 녀석이 자꾸만 대문 앞을 어슬렁거렸다. 그 녀석은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부랑자였다. 마을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내킬 때마다 우리집에 들리곤 했는데, 집 앞 도로에서 디디와 함께 저 멀리까지 뛰어다니길 좋아했다. 그러던 녀석이 요즘들어 더욱, 자주, 상당히 많은 빈도로 출몰했다. 녀석이 신경쓰였지만 단순하게 디디를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었지 '수작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막 반지하방에서 나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는 중이었다. 조립식 집이고 월세가 60만원이나 되었지만 마당이 있으니 디디를 풀어놓고 기를 수 있었다. 이사는 바로 내일이었다. 짐을 싸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런데 디디가 보이지 않았다.


  


  "야, 저것 봐!"


  "짝짓기 하나봐."




  대문 밖으로 초등학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철장을 보니 디디가 없었다. 급하게 대문을 열었다. 디디와 그 떠돌이 녀석이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디디를 둘러싸고 아이들이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눈이 뒤집혀져서 그 떠돌이 녀석을 발로 찼다.




  "으르릉!"




  짝짓기가 방해받자, 그 녀석이 위협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디디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첫 개가 저 따위 더러운 부랑자개라니. 디디가 수치스럽고 더럽게 느껴졌다.




  "떨어져. 떨어지란 말야."




  자칫 그 녀석에게 물릴까봐 두려웠지만 있는 힘껏 등허리를 발로 찼다. 짝짓기가 방해되자 녀석이 몇 번 둔부를 흔들더니 빨리 사정해버리고 도망가버렸다. 떠나가는 녀석을 한번 더 차버리니 '깨갱'하고 줄행랑을 쳤다. 디디를 거칠게 안아들고 머리통에 꿀밤을 때렸다. 디디는 연신 계속되는 꿀밤세례에 움찔거렸다. 대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디디를 철장 안으로 넣었다. 철장 문을 잠그고 아이가 괜찮은지 지켜봤다. 디디가 뱅그르르 돌면서 자리를 잡고 생식기를 핥았다. 생리혈처럼 묽은 피와 비릿한 냄새가 났다. 저런 놈의 새끼를 배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빠에게 곧장 달려가 방금 전 본 사건을 말했다. 아빠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개새끼 일 좀 그만 신경쓰고 이삿짐이나 싸라고 했다. 하지만 다시 디디에게로 올라가 디디가 생식기를 핥짝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디디의 첫 경험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디디는 떠돌이개의 새끼를 배지 않았다. 대신 새로 이사간 집 주인네 개와 밤을 보냈다. 정약결혼을 맺은 둘 사이가 오히려 더 좋아보였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신랑견은 집 주인네 개가 아니었다. 집 주인이 이 집을 매입하기 전에 있었던 다른 사람의 개였다. 신랑은 제 주인을 찾으러 갔는지 어쨌는지 훌쩍 떠나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뒤, 디디는 제 신랑의 새끼를 낳았다. 새끼는 5마리였다. 어찌 잘 길러보려고 했는데 부모님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어느 여름 날, 새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아는 사람에게 줬다고 했다.



  신랑도 떠나고 새끼들도 떠났다. 디디는 혼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월경일이 다가오면서 발정기가 돌아왔다. 디디는 혼자됨을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등교하기 전에 디디의 밥을 주러 나왔는데 디디가 보이지 않았다. 온 동네를 탐색하며 돌아다녔다. 동네 초입의 큰 교회 안, 마당에서 디디를 발견했다. 디디는 웃고 있었다. 뭔지 모를 해방감, 쾌감 뭐 그런 종류의 것들을 보이고 있었다. 설마 하면서 디디를 안아 들었다. 며칠 뒤에 디디의 배가 불러왔다. 불룩해진 배를 살살 만졌는데 새끼를 밴 것인지 그냥 살가죽이 쳐진 것인지 구분이 안됐다. 아리송한 느낌만 가졌다.




  "꾹꾸꾸꾸꾹, 꾸욱꾹."




  여느 때처럼 밥그릇을 챙기러 나왔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디디가 무엇인가를 핥고 있었는데 눈도 뜨지 않은 핏덩이들이었다. 그 때 가출하면서 새끼를 배온 것이다. 이번에는 3마리였다. 디디를 닮은 녀석은 없었고 죄다 검정에 흰색이 섞인 바둑이었다. 한 놈은 아예 검둥이었다. 디디보다는 얼굴 모를 그 아비놈과 닮은 새끼들이었다.




  "디디야, 네 팔자도 참 기구하다."



  새끼들을 품에 안아 젖을 물리는 디디에게 말했다.



  디디의 새끼들은 이전 기수 녀석들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새끼들의 눈에는 마구 달릴 수 있는 마당이 있다는게 마냥 신나보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월세가 밀려 숨죽이며 다녔다. 새끼들은 눈치없이 벽에 몸을 부딪히며 쿵쿵 소리를 냈다. 언제 한번 집 주인 아저씨가 강아지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힘들다고 하셔서 죄송하다는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한 녀석은 다른 두 마리처럼 달리지를 않았다. 한 달쯤 지났으면 아장아장 걸으면서 뛰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물고 싸우면서 놀 법도 한데. 그 녀석은 바로 검둥이었다. 검둥이의 이름을 뭘로 지어줄까 고민했다가 그냥 '까만 디디 주니어'를 줄여서 '깜디'라고 불렀다.



  깜디는 달리지 않았다. 콘트리트 바닥에 납작 엎드려 낑낑대기만 했다. 손뼉을 치면서 깜디의 주의를 끌었지만 아예 걷지도 않으려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