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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놈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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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Apr 22. 2020

늙었지만 건강해야 해요 (4)

우리집 강아지, 마냥 예뻐할 수 만은 없다. 놀이에도 규칙이 있다.

    "야! 이 미친개야!"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당에서 뛰놀던 디디가 웃으면서 쳐다봤다. 전에 없던 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디디의 웃는 입에는... 목이 꺾인 채 늘어져있는 비둘기 한 마리가 물려 있었다. 학교를 다녀온 동안 마당에서 놀던 디디가 비둘기를 사냥한 것이다. 놀이를 통해 흥분도가 높아진 디디는, 목표물이 있으면 집요하게 맹추적을 하는 사냥개가 되어 버렸다. 디디의 사냥 사건은 당시 15살이었던 내 눈에는 매우 큰 충격이었다. 내가 그녀를 부추기는 바람에 이런 성격이 된 지 모르고, 나는 무조건 아이를 책망했다. 아이는 물고있던 비둘기를  뺏기지 않으려 했다. 억지로 비둘기를 끌어당기면 왠지, 사체에서 끔찍한 것들이 흘러나올 것 같아서 위생장갑을 끼고 다른 간식으로 유인하여 저절로 입을 벌리게 했다. 간식의 유혹에 입을 벌린 디디에게서 비둘기를 꺼내고,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간식을 게걸스럽게 먹은 디디의 입을 벌려 양치질을 해주고 하루종일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비둘기 사냥의 해프닝은 놀이에 대한 자세를 바꾸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놀이를 하는 그 자체가 좋아서 규칙없이 마구잡이로 내버려둔다면, 사냥 본능을 통제하지 못해 어긋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저 규칙 몇 가지 아래에 함께 즐긴다면, 사냥 본능과 스트레스를 좋은 방향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보호자와 함께 신나는 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충분히 아름다운 추억이니까 말이다.







  왜 규칙을 세워야 하나?




  디디는 평소에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가 놀이만 시작하면 흥분해서 사냥개 본능이 튀어나왔다. 공을 던지고 물어오기 같은 운동활동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바닥에 터그놀이 장난감을 끌어가면 앞발로 콱 잡는 추적놀이를 좋아했다. 이것이 문제였는데, 이 놀이를 아주 좋아하는 녀석들은 중간에 잠시 휴식을 가져서 흥분도를 낮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표물에 집착하는 아이가 될 수 있다. 디디에게는 이 점을 간과했다. 흥분한 디디를 보면서 내가 더 흥분하고 좋아했다. 얌전하던 녀석이 활발히 움직인다면서 박수를 치고 좋아했다.



  사고 트라우마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있을까? 보통 모든 아이들은 놀이를 '환장'하며 좋아한다. 그 '환장' 때문에 흥분도가 높아진 나머지 보호자가 컨트롤이 어려울 때도 있다. 아이의 흥분도를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십중팔구 본인이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성격으로 고착되거나, 노견이 되었을때 주인을 물거나 신경성 성격이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이에, 놀이활동에 필요한 몇 가지 규칙을 적어보았다.



  





  첫번째, 시작과 끝이 있는 놀이를 설정하자.


  놀이의 주도권은 개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아이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면 칭얼거리는 응석받이처럼 굴게 된다. 출근 준비 중에도 놀아달라고 장난감을 물어올 수도 있고, 자고 있는 새벽 중에 얼굴 위로 장난감이 떨어지는 스릴을 맛보게 될 수 있다. 아이와 놀아주지 않을 때는 요구의 강도가 더해질 수도 있다.

  디디의 아이들에게 이걸 잘 하지 못해서 봉변을 당했었다. 같이 마당을 달리면서 누가 더 빨리 달리나 시합을 하곤 했었는데, 1년도 안된 아이들과 하다보니 너무 지쳐서 좀만 쉬었다 하자고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내 몸을 타고 기어 올라와 마구 핥고 꼬집어댔다. 나는 4마리의 달리기 노예가 되었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장난감 놀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끝을 모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자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똑같이 놀아줘야해서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두번째, 아이를 속이려 하지 말자.


  아이를 일부러 약올리려 하거나 속이는 행위로 혼란을 일으키지 말자. 처음 몇 번이야 아이에게 트릭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어도, 이것이 반복되면 사람도 짜증이 나듯이 아이도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뒤 주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뒤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초조하게 하는 놀이는 신뢰도 하락의 지름길이다. 또 아이가 금새 시무룩해지거나 패배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 꼭 주의해야 할 것이다.





  세번째, 싫증이 나기 전에 반드시 놀이의 끝을 알려주도록 하자.


  펫시팅을 하다보면 초반 집중력에 비해 빨리 질려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아이가 놀이활동을 질려하지 않고 기대감을 갖게 하기 위해, 사전에 우리 아이가 어떤 성향인지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만약에 터그놀이를 5분 정도 진행하다가 아이가 장난감을 툭 내려 놓는다면, 다음에는 4분, 3분 정도로 줄여서 진행해보자. 아이가 좀 더 놀고 싶은 느낌이 들어도 노는 시간을 적절히 맺는 것이 좋다. 아이가 흥분도를 가라앉히고 다른 행동으로 이어가는데 도움이 된다.





  네번째, 무조건 아이가 이기게 하지 말자.


  아무리 순하고 얌전한 아이라도 '개'라는 동물 특성 상, 승부욕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아이가 이기는 상황에서는 분명 자신감이 올라가고, 보호자가 이기는 상황에서는 역시 믿을만한 사람이다 라는 리더십을 느끼게끔 한다. 이런 부분이 계발되기 위해서 무조건 아이가 이기게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만 이기는 게임을 진행한다면 보호자를 충분히 이기고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주인의 밥상머리에 올라가 음식을 뺏어먹거나 주인의 물건을 마음대로 뺏어가서 물어뜯는 등 제멋대로의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3번의 게임에서 1번 정도는 아이가 져주는 방향으로 놀게 한다.





다섯번째, '아까 봤는데' 하는 볼멘소리 방지를 위해 정리정돈은 필수!

  

 마음이 아프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보호자의 경우에 아이가 심심할까봐 바닥에 장난감들을 고스란히 두고 출근하시는 분들이 많다. 긴 시간 동안, 아이가 스스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는 사실 쉽지 않다. 실제로 입실 후에 배변 패드에 뒹굴고 있는 장난감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난감은 놀이 후,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 보호자가 장난감을 다시 집어든다고 생각해, '아까 봤는데 또 해?'하며 쉽게 질릴 수 있다. 장난감을 어질러둔 채로 둔다면, 아이가 장난감을 물어와서 언제든지 놀아달라고 하며 놀이의 주도권을 아이에게 줄 우려가 있다. 보호자가 놀이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정리정돈은 필수여야 하겠다.








   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놀 수 있다면 보호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알고 있다. 이와 같은 규칙을 지키면서, 아이와의 예쁜 추억을 쌓아간다면 아마 그 기쁨이 두 배, 세 배가 되지 않을까? 모든 보호자분들의 놀이활동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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