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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문인지 요즘 꿈이 많아졌는데 무의식 세계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옛날의 실수로 인한 부끄러운 일들이 소환되곤 한다. 우리들은 보통 ‘의도하지 않은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하지만 실수는 반복돼도 문제이고 너무 회피해도 배울 기회를 잃게 된다.
사고(실수)를 회피하려 과보호하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사례를 들여다 본다.
어릴 적, 마을에는 서 씨 성을 가진 집이 있었는데 딸 아홉 명에 막내로 아들을 얻었다. 그의 부모와 누이들은 말 그대로 막둥이를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거두었다. 위험한 곳은 근처에도 얼씬하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같이 노는 것도 제한했다.
그에게는, 무엇을 자유 의지대로 실행한 경우가 드물었던 것이다. 물론 신체적인 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가족의 눈길이 느슨한 사이에 홀로 들판에 나갔다가 조그만 웅덩이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여느 시골아이처럼 멱 감고 뛰어놀면서 실수를 경험했다면 그처럼 허무하게 가족 곁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번 실수(失手)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실수는 일어날 수 있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뜻이다. 많은 유명인들이 실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말들을 했다. 실수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취지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은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상대에게 피해가 없으면 그나마 잠시 자괴감 정도로 끝낼 수 있지만 영향이 전 방위 적으로 미치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래서 은폐하려 사활을 건다.
배우는 과정이라면 용인되는 것도 프로의 세계에서 실수의 의미는 달라진다. 동형을 반복하면 최악이다. 자신의 자리보전과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실수의 최소화가 필요하다. 오죽하면 “적의 실수는 나의 기회”라고 하겠는가!
나름 실수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성장과정에서의 실수는 유익하다. 이런저런 실패를 경험해야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실수, 실패 또한 그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돌아온다. 강박증이나 완벽주의자에게는 실수가 우호적이지 않다. 설령 실수가 발생해도 절대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공의 적인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실수가 무조건 미화되어서는 곤란하다. 책임 및 윤리의식 부재로 인한 경우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주의력 부족 등으로 인한 반복되는 실수는 바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중대한 의사결정을 실수하는 경우는 사회전반에 미치는 해악이 지대하다. 작금의 우리나라의 경제와 외교정책이 불안하다. 실수로 인한 시행착오 비용은 적을수록 좋다.
한편, 개인의 삶을 통해 자잘하게 발생하는 실수는 반성하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으면 매우 유익하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만으로 훌륭하다. 도전-실수(실패) – 피드백 – 재도전의 선순환 구조는 우리 자신과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실수에 관한 명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다.
“우리가 하는 독창적인 일은 실수뿐이다.”- 빌리 조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