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딤돌 Mar 30. 2024

아! 옛날이여

<5>

(네이버  눈이 맑은 천사)


나 : 목욕 시간이 조금 길어져서 그랬나? 왜 이리 눈이 빡빡하지? 눈 속에서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것 같아 (물론 평소에도 안구건조증으로 고전 중이다)


처 : 연식이 좀 돼서 그러는 거야. 얼마 전 티브에서 봤어! 우리 몸엔 안구를 부드럽게 하는 기름성분이 나오는데 나이가 들면 질이 떨어지고 분비량도 줄어든다네. 아, 그렇지! 일회용 인공눈물 약이 있는데 한번 봐야겠다. 음, 유통기한 이내로군. 여깄어! 포장 뜯고 꼬다리를 돌리면 떨어지걸랑? 눈동자를 스쳐 액체가 흘러내리도록 잘 넣어봐.


나 : 조금.. 눈에 넣어 주면 안 될까?


처 : 어이구, 그런 건 본인이 직접 해야지 누구보고 해달라는 거야? (그다음 말은 없었지만 나는 안다. 관심법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니는 눈 하고 손은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냐?" )


나 : 화장실에 들어가 큰 유리 앞에 섰다. 음, 일단은 넣고 따지자. ( '연애시절이거나 내가 잘 나가던 시절이었으면 어이쿠 서방님 제가 넣어드립죠 했을 것이다'라고 억지 상상을 하면서)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목적을 달성했다. 금방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분도 한결 누그러졌다. 에이,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불필요한 전선(戰線)을 전개하지 말자. 어차피 지잖아...


( 평소 분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날도 꾸물거려 라면이 당겼다. 주문을 하니 바로 대령한다.)


  옆지기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삼식이의 세끼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모님의 유훈("싸우더라도 니 남편 밥은 챙겨 주고 싸워라!") 덕분이다. 지금도 충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다.


나 : 배도 더부룩하고 해서 산책 좀 나갔다 올게.


처 : 밖에 비 오는데?


나 : 비 오면 밥 안 먹나? (내가 항상 하는 소리다. 군대서 배운 걸 응용한 말이다. 비 온다고 전쟁 안 하냐? 가 원조다)


처 :... (이 경우도 관심법으로 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으~ 저놈의 입, 이쁘게 말하면 어디 덧나나?)

(네이버)


  집을 나서니 우산이 필요할 정도의 비가 계속 내린다. 공기 질은 좋지만 마스크를 썼다. 이 경우 약간의 습기를 동반한 콧바람이 눈에 영향을 주어 눈이 조금 부드러워지는 기분을 느낀다. 거기다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까지 불어주니 고목에 수액이 돌 듯 고장 난 눈물샘에 물기가 돌기 시작한다.


  산수유, 개나리, 목련을 쳐다보면 눈의 불편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고 자연의 선물에 몸 둘 바를 모른다. 연한 연두색을 띤 새싹을 보노라면 세속의 표현대로 안구정화가 되는 기분이다. 날씨가 고르지 않아서인지 나밖에 없다. 갑자기 모든 인간이 증발되어 없어지고 나만 홀로 남은 느낌이다. 반면 좋은 면도 있다.


  비가 조금 내리는 날의 대기 냄새는, 예전 어느 광고멘트처럼 <남자에게 좋긴 한데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을 적절하게 묘사할 필력이 안 돼 유감일 뿐이다. 정말 상큼하다.


(산책을 마치고 현관으로 들어선다)


처 : 젖은 우산은 집으로 들이지 말고 문밖에 놔둬.


나 : 응. 킁킁~ 환기가 좀 필요해 보이는데.


처 : 비 들이쳐.


나 : ‘그냥 열까? 아니야 괜히 충돌하면 피곤하지. 그래 저녁 짓고 난 후 한꺼번에 환기하자.’


(책상에 앉는다)


  '오, 통재라! 아! 서럽다. 언제 이인자로 강등됐지? 왜 또 눈은 따가 운 거야? 노화가 조금 늦게 진행되면 어디 덧나나?' 혼잣말로 하지 않고 소리 내어 말하면 옆지기가 이렇게 나를 몰아붙일 것이다.


 “아~언제는, 모름지기 인간이란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만 왜 자꾸 징징 거리는 거야!”


  아~ 언제 내가 그랬었나? 


  양심이 있으면 봐봐! 지금까지 당신이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봐라, 논조가 전부 그렇잖아~


  아~ 쑥스럽구먼! 글을 쓰기 전에 언행일치를 맹렬히 실천하자~    

작가의 이전글 일확천금 가능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