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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Apr 02. 2024

외롭지 않으면 발전도 없어

<4>

  

(네이버)

  

  말(馬)은 제주도로 가는데 나는 사람이라서 스무 살이 됨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왔다. 동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눈보라가 치면서 제법 추운 날 남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화려한 불빛과 야경이 시골총각인 나를 압도했다. 이때 문득 스친 생각이 있었다. 많은 건물과 사람들이 있는데 이 한 몸 발 뻗을 사적 공간과 연락할 사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혈기왕성한 때라서 그랬는지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듯하다.


  왜, 외로운가? 병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세 가지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첫째는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부족한 경우이고, 둘째는 자신의 불편한 심적 상태를 남에게 의지해서 해소하려는 바람직하지 못한 심리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라고 본다. 마지막은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너무 한가하다는 얘기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보통 군대에서 교관은 교육생의 집중도가 떨어지면 혼을 빼듯 몰아붙인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들을 위해 콕 집어내는 신통한 처방을 내리겠다고 여기저기서 나선다. 하지만 단박에 증세를 해결할 시원한 묘수는 없다. 나의 생각으로는 본디 외로움 자체가 병이 아니며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일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시련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기복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심리상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니 숙명으로 받아들이라!"는 진리다. “홀로서기 방안”이란 그럴싸한 말을 동원한 후 비법이라면서 요령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점”도 설명한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다. 고(孤) 자 자체가 외롭다는 뜻이다. 굳이 차이를 들자면 고독은 자처한 것이란 뉘앙스가 있을 뿐이다. 고독을 그럴싸하게 미화하고 있지만 외로움이란 깊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에두른 표현이라고 본다.    

 

  물리적으로 철저하게 혼자된 이들은 외로움이 남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범한 입장이므로 그들의 입장에 서보지 않았으니 섣불리 얘기하면 경솔한 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군중 속에 있어도, 배우자와 가족, 친인척, 친구와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 저간에서부터 이심전심이 밑바침 되지 않으면, 왁자지껄 한바탕 떠들고 난 후 돌아서는 발걸음 뒤엔 공허함과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보통의 경우, 평생에 걸쳐 ‘가족이란 틀’ 안에서 함께하지만 구성원 상호 간에 웬만한 배려심이나 인내력 없이는 뜻을 함께하기 어렵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엔 화목해 보일지라도 의외로  각자의 가슴엔 외로움이 한가득 배어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외로움의 해소 비법은 특별히 없다는 생각이다.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를 외롭게 하는지에 대해 집중해서 관찰하면 대개의 경우는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초라해지거나, 아프거나, 생의 마지막 커튼 앞에 서게 되면 외로움은 필연적이다. 누가 대신 할 수도 없고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다. 평소에 마음 근육을 키워놔야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의도적으로 멀리하여 외롭다면 자신의 “삶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즉, 나에게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허물은 모른 체 남 탓하며 외로움 운운하면 자가당착이다. 


  반면, 무리 속에 있으면 에너지가 방전되고 불편하다면 굳이 외로움이랄 것도 없어 보인다. 전형적인 홀로서기 스타일이며  전문가의 별도 도움이 필요 없는 유형이다. 외롭지도 않고 구속도 없는 환경을 원한다면 과도한 욕심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당사자의 몫이다. 예외적으로 병적인 외로움은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방치하면 우울증을 거쳐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경우를 근거리에서 보았다.

  

  ‘외로움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외로움을 모른다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쓰디쓴 고통을 경험해 본 후라야 곁에서 함께하는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수시로 다수 속에 휩쓸리면 ‘진정한 자신’을 알아채기 또한 쉽지 않다. 결국은 같이 어울리되 때때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정된 에너지를 적절하게 배분하여 사용하는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

    

  모든 감정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외로움의 긍정적 요소를 발견해 보자!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이 갖는 시간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정신적으로 자유로운가!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일 수 있다. 외로움을 핑계 삼아 주저앉지 말고 대신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그만큼 성장할 것이다. ‘사색과 성찰은 외로움을 저만치 밀어낸다.’ 누구는 이를 "고독으로의 승화"라고 말한다.


  나에게 있어 외로움이 문제라는 인식은 약간 사치, 어리광쯤으로 이해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 자신도 항상 외로웠다. 운명, 환경, 인생 이력 등이 우호적이지 않고 늘 그늘이 함께했다. 하지만 이런 여건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것뿐이다. 잠깐이면 몰라도 오래도록 외로울 시간이 어디 있나? 외로움이 찾아오면 이제 슬슬 바삐 움직일 시간이 됐나 보다 하고 뛰쳐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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