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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오해하기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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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아파트 창문 맞은편이 약간 비탈진 산자락이다. 무심히 밖의 풍경을 보곤 하는데 자연의 변화 외에 나의 눈길을 종종 사로잡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길고양이 들이다. 겨울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모래목욕을 즐기고 더운 계절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아래 삼삼오오 모여 한가롭게 시간을 보낸다. 간혹 새끼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는데 요즘은 보기 힘들다. 중성화 시술 영향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마을 주민 중에는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없는듯하다. ‘캣맘’이라 불리는 분들의 정성 덕분인지 그들의 건강상태도 좋아 보인다.


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고양이를 기르셨는데 “개덕이”라고 부르셨고 우리들은 도둑고양이라고 했다. 제수용으로 쓰려 생선을 손질하여 말리려고 하면 어느새 냄새를 맡고 주위를 어슬렁 거린다.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던 그들은 반 야생 상태였고 배가 고플 때 만 집으로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항상 내 곁에 있는 강아지와는 너무 달랐다. 그 이후로는 고양이를 가까이한 적이 없으니 애틋한 마음 또한 덜했다.


멀리서 보는데도 살이 쪄 통통하고 복스럽게까지 보이길래 ‘생각보다는 잘 지내는 친구 들 이로군’ 하고 말했지만 오래지 않아 이 표현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우연히 알게 됐지만 고양이는 염분을 과다섭취하면 안 된다고 한다. 인간의 부산물을 먹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찐 게 아니라 몸이 퉁퉁 부어올랐던 것이다.'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개체들에게 한때나마 팔자 편한 녀석들처럼 생각했으니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모르니까 오해를 했다.


사람의 태도가 갈대처럼 흔들리니 녀석들의 운명 또한 불안정하다. 어떤 친구들은 좋은 보호자를 만나 호사를 누리는가 하면, 또 다른 환경에 있는 개체는 학대받고 추위, 더위와 굶주림에 고통받으면서 보낸다. 이상한 사람들의 단순한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울음소리가 싫다고 배척당하고, 쓰레기를 뒤집고 다녀 비위생적이라고 낙인찍힌다. 특히 동물 학대 소식을 들으면 그 같은 행위를 한 자가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이 맞는가 하고 강한 의문이 들곤 한다.


동물보호법을 제정하고 동물복지 운동 전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은 삶의 본능에 충실한 것뿐인데 인간 눈에는 불편하다. 호모사피엔스 기준으로 유익하면 좋은 것이고 무익하거나 거추장스러우면 나쁜 것이다. 나도 그런 방식의 사고에 익숙하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 해보면 무엇 하나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 행성의 주인은 생명체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길고양이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160924_162057.jpg (팔당 댐 근처 지인 텃밭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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