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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Apr 12. 2024

변덕

<5>

(변덕스러운 날씨 / 네이버)

  

  소화기관이 신통치 않아 몸은 반기지 않지만 분위기는 가끔 술을 부른다. 그래서 마나님이 준비하는 식탁에 안주감이 차려지는 날에는 식사를 하면서 혼자서 몇 잔씩 기울이곤 한다. 그런데 미각(味覺), 이 친구가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일관되지 않고 변화무쌍하다. 평소엔 소주나 탁주를 단짝으로 삼는데 어느 경우에는 약한 술이, 아니면 독한 술이 번갈아 가면서 당길 때가 있다. 


  그래서 청주 한 병, 자녀로부터 선물로 받은 양주 한 병(바닥을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을 준비하여 마치 비상시 구급약처럼 식탁 옆 수납장에 비치해 두었다. 안주도 마찬가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편단심 바다 물고기 추종자였다. 하지만 요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입맛이 은근슬쩍 육류파로 전향을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신념이나 가치관이 변하면 사람 변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초지일관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변하더라. 무덤에 가고 나서야 나의 진보적인 사고와 태도는 끝이 날 것이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게으르고 사악하기까지 한 약자들이나 극좌,  영혼도 없이 생계수단으로 패거리를 따라 진보를 주창하는 사람들까지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반대로 평생 배척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보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내 마음속에 생겼다. 근면성실, 능력중시,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은 당연히 수용한다. 누군가가 변한 모습을 보이면 그 친구 죽을 때 됐나 보다고 말한다. 내가 그런지도 모른다. 이념뿐만이 아니다. 내 주위의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전의 마음이 아니다. 물론 존경심이 희석됐다는 뜻은 아니다.


  슬프기만 했던 부모님과 큰형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름 인생을 잘 살아내다가 자연스러운 부름을 받고 순응하셨구나.라고 생각한다. 가슴이 덜 아프다. 오 형제 중 넷째였던 나는 자존감은커녕 스스로 대가족의 부속품 정도로 여기며 살았다. 언제든 이 한 몸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기꺼이... 현역시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교전지역 해외파병을 자원한 적도 있었다.


  혹여 잘못되어  눈을 감더라도 가족에게 보상금이 전해지길 기대하면서... 지금 돌이켜 보면 조금 그렇다. 그렇게까지 자존감 바닥을 보이며 살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변덕이라 함은 덕(德)이 변한다는 것인데 살아보니 자연스러운 거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경의 변화가 유혹하면 따라가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그 방향이 반사회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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