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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Apr 17. 2024

자연 친화적인 이름?

< 작명과 개명에 대하여(3)>

 

(네이버)


 어느 묘비를 보게 되었는데 고인의 함자가 <*팔만>이다.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다. 아마도 이분은 어머니 뱃속에서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미숙아 신분인 세입자에게 누가 방을 빼라고 재촉을 하지 않았을 텐데도, 서둘러 안온한 보금자리를 탈출하여 8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옛날에는 이런 분들에게 주로 팔만 (八滿)이란 이름이 주어진다는 걸 어른들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다.


  나의 부모세대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서 산파의 도움아래 출산을 했기 때문에 미숙아로 태어나면 세상을 등질 확률이 높았다. 당시에는 인큐베이터는 고사하고 병원 가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자의 어머니 된 분께서는 철딱서니 없이 일찍 찾아온 자식을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키워냈을까? 모친의 지극정성이 없었다면 고인은 세상이력을 하나도 쌓지 못한 채 그야말로 바로 별이 됐을 것이다.


  이런 경우의 사례는 그래도 작명의 사유가 타당해 보인다. 나는 과거에 직업상 행정서류를 접할 기회가 많아 개개인의 성명을 다양하게 본 경험이 있는데 심한 경우는 정식 이름이 없고, 집에서나 지인 간에 불리는 호칭과는 달리 <*씨(氏)>라고만 공부에 등재된 경우까지 있었다. 당시에는 보호자가 글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래도 한자 좀 읽고 썼다는 면서기 나리님들이 직무태만(?)을 한 건 아닐까?   

   


  

 (아래는 필자의 상상에 기반한  허구의 대화다.)


  딸이 태어나고 일 년쯤 지나자 "인자는 안죽을랑가 보다" 중얼거리면서, 모처럼 자식의 출생사실을 신고하러 나온 아제(성은 나씨다)가 읍내에 발을 디뎠다. 파전에 막걸리 파는 곳을 발견하곤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소중한 엽전을 털어 술을 주문한다. 얼큰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엽전하나, 막걸리 한 사발 더, 반복하다 보니 취기가 제대로 올랐다.


  (주모와 더욱 친밀해지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겨 면서기 앞에 선다.)


아제 : 아, 다섯째 딸년 호적에 이름을 올려야 허는디


서기 : 이 사람 대낮부터 술 냄새 풍기긴 쯧쯧...  낮술에 취하믄 지 애비도 못 알아 본다잔혀 ~ 그래 딸아 이름이 뭐시여?


아제 : <끝자>구만유~ 딸들만 주루룩이니, 이제는 끝을 보고 담에는 아들보고 싶어 그렇게  지었소


서기 : 아아, 한자로 말혀봐. 한글 이름만 갖꼬는 신고가 안되니께..


아제 : 아이고오~ 까막눈인 내가 글자를 알먼 이모냥 이것수, 알아서 올려주슈. 저번 닛짜(넷째) 때는 그냥 죽고싶어 <나 죽자(竹子)>로 해달라니께 잘만 혀 주던디... 


서기 : (그랴, 죽자는 한자라도 쓸 수 있으니 그랬제, 면서기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럼 댁의 다섯째 딸 이름은 <말자(末子)>네~  끝이나, 말이나 그게 그거니께


아제 : 알것슈, 말자라~. 작명값으로 막걸리라도 한사발 대접혀야 허는디 송구스럽구만요. 댐에 봅시다.


  (아제 혼자 중얼 거린다. "끝자. 말자. 끝자. 말자" ..... 그래, 니는 지금부터 "나 말잔"겨.)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오십 대 이상만 돼도 정말 비인도적(?)인 이름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부모들의 고달팠던 상황도 일면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당사자는 평생 큰 스트레스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이런 경험도 있다. 어느 민원인의 관련서류를 접수 후, 그럼 잠시 앉아 기다리면 부르겠다고  했더니 그냥 한사코 바로 앞에 서 있겠다는 거다.  서류를 들추는 순간 그분의 깊은 아픔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민망할 정도의 이름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이 호명되는 게 힘들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영화제목이 기억에 떠오른다. <늑대와 함께 춤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인디언 식 작명법이고 사람 이름이란다. 작명에도 공식이 있다. "늑대는 1월을, 함께 춤을은 1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전설적인 한 추장의 이름은 <앉은 황소>라 하니 참으로 신기하다. 타민족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 능력이 되는 집안은 작명소를 찾아다니며 큰돈 들여 신중하게 자녀의 이름을 짓기까지 한다.


  나도 조금 여성스러운 이름이라서 어려서는 스트레스였다. 하물며 공개적으로 부르기 민망한 이름의 소유자는 어떤 심정이겠는가! 자존감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진심으로, 등재된 자신의 성명에 불만족할 경우 주저 말고 개명하기를 권한다. 절차가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으며 판사도 상식선에서 수긍이 가면 무난히 허가를 한다고 한다. 멋진 이름을 상상하였다가 바로 실행하기 바란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身體髮膚 受之父母)라서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성형마저 자유롭게 하는 세상이다. 


   우스갯소리로 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고자임, 방귀남, 권태기, 추미남, 신호등....>" 등과 같은 이름도 있다고 한다. 이건 철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어른이 됐다한들  당사자는 힘들 수 있다. 특별한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면 이 글을 계기로 개명의 용기를 내시기 바란다. 파이팅!         

  


* 이글에서 예시로 든 이름을 희화화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 1950년대만 해도 농촌지역에선, 신생아 시절 사망사례가 많다 보니 바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무탈하게 자라는 확인 후 신고하다 보니 실제나이 보다 호적상은 한두 살 어린 경우가 많았다. 

* 身體髮膚 受之父母 : 육신과 털,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따라서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1895년 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을 내리기 전까지 상투를 틀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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