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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Sep 26. 2024

아저씨 아니고 할아버지야!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들이 바쁘다. 조급해하면 오히려 꼬인다고 승강기가 층층이 서는 것 아닌가!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오면서 안면이 굳어졌다. 적지 않은 기다림 끝에 문이 열렸는데 지하 3층 주차장에서부터 출발한 선탑자가 있었다. 유모차에는 밝은 얼굴의 남자어린이가 앉아있고,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유모차를 옆으로 붙이며 내가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나는 어린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하여 다급히 표정 변신을 해야 했다. 굳었던 얼굴 근육을 재빨리 펴고 인자한 모습으로 총명해 보이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와! 너 눈이 예쁘구나! 씩씩해 보이고!' 서너 살 정도의 아이인지라 나의 칭찬에 대해 직접적인 감사표시는 하지 못했으나 나를 보고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연신 반복했다. ‘그래 나는 할아버지야’ 했더니 자신이 제대로 맞추었다는 듯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아이의 할머니가 나를 슬쩍 비껴보더니 할아버지 아니고 ‘아저씨야’라고 말한다. 아마도 나에게 예를 갖추느라 한 선의의 거짓말일 것이다. 아이도 지지 않았다. “아니야, 아저씨 아니고 할아버지야!” 나는 온통 흰머리이긴 하지만 벙거지 형태 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꼬마가 쉽게 단서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 같다. 먼저 내리는 꼬마에게 안녕하며 손짓했더니 녀석은 “빠이빠이”한다. 짧은 대화였지만 자연스럽게 미소가 내 얼굴에서 피어났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어린아이들의 상황 파악과 공감 능력은 훨씬 뛰어나 보인다. 오늘 사례는 나의 겉모습에 대해 어른의 배려와 아이의 직관력이 충돌한 경우다.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아이가 알면 곤란하다는 이유로 어떤 현상이나 사실을 무작정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부모의 현재 입장이나 느낌 등을 제대로 전달해 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어린 자녀들이 가급적 상처를 받지 않게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공감을 잘해 주는 어른들과 함께 한 가정에서 훌륭한 자녀가 나온다는 말은 틀림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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