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 그동안 쏟아부은 비용을 두고서 “수업료”라고 비유한다. 그런데 현재 이어지고 있는 탄핵정국으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제반 피해를 간단히 수업료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흔히 정치권에서 문제가 발생되면 정치인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지만 바른 진단이 아닐 수 있다.
그 정도 수준의 대표자를 선출한 유권자가 책임을 지는 게 옳아 보인다. 대외 무역, 금융시장 참여자, 고용 현장, 영세상인들의 곡소리가 들끓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자신들은 하자가 없는 양 하는 무책임의 극치일지 모른다. 자신들이 선출한 이가 ‘그럴 줄 몰랐다’는 말은 어린이들 세계에서나 통한다. 눈앞의 이익, 이념, 학연, 지연에 휘둘리고 난 후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다.
우리는 단기간에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부작용의 동반은 필연적이었다. 가장 드러나는 특징을 예로 들자면 대화실종, 승자독식이다. ‘주위의 건강한 의견조차도 신속한 의사결정에 반하고 사업진행에 장애물일 뿐이다.’는 사고방식이 지배한다.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형식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건지 모호하다. 약자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하는 증오의 대상으로만 간주한다.
과반을 간신히 넘은 선거결과를 가지고 권력을 쥔 집권자들은 직무개시와 함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지지자 외의 국민은 안중에 없다는 듯 행동한다. 즉 “국민을 위해 행동한다.”는 말을 깊이 들여다보면 지지자들만을 위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보복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언제나 이성이 감정 앞에 서게 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가늠하기 어려운 수업료를 앞으로 지불하게 되겠지만 그나마 얻는 게 있어야 한다. 바로 권력 분산이다. 독단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꼼꼼하게 정비되어야 한다. 견제는 귀찮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보노라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 사람의 잘 못된 판단이 전 국민을 공포와 비극으로 몰아넣을 수 있어서다.
우리는 뛰어난 국민임과 동시에 냄비근성이 있다는 말도 듣는다. 또다시 국민은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할지 모른다. 내 이익 앞에서 정의, 도덕, 양심 등은 방어막으로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동일 사건을 두고서 바라보는 시각이 제각각 천차만별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의 어수선함이 오히려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진전한다는 말을 믿는다. 올바른 대표자 선출은 너와 내가 따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