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이 마비된다는 것

by 디딤돌


나에게 용의 해 마무리 즈음은 시련의 연속이다. 십일월 끝무렵에 철봉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후 몸이 성하지 않은데 설상가상의 형국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화불단행이란 사자성어는 그냥 있는 말이 아닌 듯하다. 계엄사태로 밤잠을 뒤척이다 컨디션이 나빠지더니 불청객 감기가 찾아왔다. 정식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두세 해 전 경험에 비추어 감기의 원인 바이러스를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로 추정이 된다.


감기 초기에는 콧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으로 몰아가더니 지금은 가래, 목마름 증상과 함께 협공하고 있다. 입맛에도 이상이 있음을 알아차렸는데 지금은 냄새까지 맡을 수 없다. 평소에는 견공(犬公)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는데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밖이 차갑지만 실내의 냄새 때문에 환기를 위해 창문을 자주 여는 것에 불만이었던 배우자는 차라리 잘됐다고 농담한다. 느낌이 아닌 습관대로 환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주 인용하는 “색성향미촉법” 중에서 향(香)과 미(味)의 기능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으니 앞으로 내려놓기 위한 수행을 시작한다면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서는 게 아닐까 한다. 물론 나이 든 출가자를 환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냄새에 대해 우리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보인다. 아름다운 꽃마저도 시들고 향기로운 냄새가 사라지면 아름다운 꽃병에서 내려와 쓰레기통에 몸을 맡겨야 한다.


소화기관인 위와 장은, 하루 종일 자신의 몸 안에 쏟아부은 음식물을 분해하고자 아무런 불평 없이 맡은 바 임무에 묵묵히 매진한다. 심지어 우리가 꿈나라에 있는 중에도 운동을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마법의 시간이 흐르면 입력물을 말끔히 분쇄 정리한 후 잔존물을 몸 밖으로 내 보낸다. 화장실에 쭈그려 앉은 이는 고맙다는 말은커녕 자신이 지어낸 산화물에 대해 냄새난다며 이마를 찌푸린다. 인간이 이런 존재다.


나는 차라리 냄새와 맛을 느끼지 못하는 이 순간이 더욱 인간적인 상태라는 기분이 든다. 편견이 없으니 나의 주관적인 상을 지을 필요가 없다. 어쩌면 이런 상태가 행복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던 청국장, 홍어, 비린내 나는 생선 모두 덤벼라!... 비록 큰소리는 쳤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현실 속 삶의 질이 엉망이 될 것 같다. 나는 범인(凡人)이다. 차라리 깨달음을 미루고 싶다. 다시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타락한 인간모습을 받아들일지언정 감기와의 오랜 동행은 바라지 않는다.


연말이다. 유감이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시국이다. 고르지 못한 날씨와 엄중한 사회분위기이지만 모두들 무탈하시길 기원한다. 몸이 힘들면 영혼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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