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

<삶이 괴로운 이유>

by 디딤돌

인생살이가 녹록하지 않다고 말한다. 힘듦에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여기서는 불필요하게 스스로 불러오는 괴로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인류가 본디 그다지 순한 종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상대방에 대하여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고 분노를 폭발하려 든다.


평소 불만이 쌓인 정치인이나 방송인이 화면에 나타나면 쌍욕을 곁들이며 채널을 돌린다. 철천지 원수라면 차라리 안보는 게 건강에 이롭기는 하다. 미운 이 가 눈앞에 아른거리면 이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표시의 한 방편으로 상대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고 먼 산을 본다.


따지고 보면 이런 행동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다. 그는

내가 아닐진대 어떻게 내 마음에 쏙 들도록 행동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바랄 걸 바라야 한다. 조금 더 도덕적이냐 덜하냐의 차이일 뿐 누구나 제 앞 가름 먼저 살피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의 기준으로는 이해 못 할 부류가 항상 있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조기에 현 대통령 파면을 희망하지만 애써 결사옹위하려는 세력이 있다. 그게 그들이 체득한 삶 방식이기에 비난 외에는 별 방도가 없다. 왜 그렇게 행동할까?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아도 기회주의자가 더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대체적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이 지난 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의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피차간에 상반된 존재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인구감소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상당 기간에 걸쳐 수백 조를 투입했음에도 가시적 성과가 별로라서 고민하지만 꼭 출산을 해야만 하느냐고 반문하는 부류도 있다. 지금도 인구과밀이라고 보는 시선이 어엿하게 존재한다.


나름의 주장은 모두 타당한 면이 있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뿐이다. 원자력발전을 두고도 말이 많다. 실리냐 환경보전이냐의 시각만 다를 뿐이다. 처한 입장에 따라 개인의 호불호는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화가 치솟는다면, 재차 말하지만 어리석어서 그렇다.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줄일 수 있을까? 독야청청(獨也靑靑) 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를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갈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내 자식마저 마음대로 안 되는데 하물며 불특정 다수의 타인임에랴. 차라리 자신이 먼저 바뀌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절대불변의 진리라는 명제는 자연 현상 외에는 없다고 본다. 인간의 이념이나 사고, 판단이 무결점 상태로 완벽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어느 말이 진리에 가까울 수는 있어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같은 이치로서 상대는 그르고 내 생각만이 옳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역지사지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인간에 대해 높은 기대는 괴로움을 불러온다. 종교, 도덕, 관습이 왜 생겨났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유무형의 규제가 없다면 인간은 폭력, 파괴, 탐욕 등과 본능적으로 친하다. 교육과 교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악의 발현을 제어할 수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 덜 화난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도 나의 견해와 사적인 이익을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아쉬움으로 충분하지 괴로워할 일은 아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정당이 권력을 가져갔다고 해서 원천무효 시킬 방법은 없다. 두고두고 분해하면 지는 것이다.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방송 출연자, 개인방송 운영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잠시는 시원할지 몰라도 내면 깊숙이 증오의 찌꺼기만 쌓인다. 다음은 무엇이 손짓하는가? 화병 아니면 대사 장애가 친구 하자고 할 뿐이다. 이래도 괴로움을 자초하겠다면 어쩔수 없는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후각이 마비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