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적절한 돈을 가져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해 글을 썼다. 이번에는 우리가 돈을 써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적는다. 돈을 쓴다는 건 새로운 경험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이 짧다는 말에 고개만 끄덕일게 아니라 좌고우면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빨리 서둘러하라는 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저 늙은이가 다 되도록 돈을 쓰지 못하고 쩔쩔매기만 한다면 세상 잘 못 산 것일 수 있다. 시대적인 여건 상 어쩔 수 없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에 그런 분들이 많았다. 인간적으로 애틋하고 가슴이 시리다.
왜 우리는 돈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시점을 놓치고 꼭 인생의 마지막 커튼 앞에 서야만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 모르겠다. 하긴 평소에 써 본 적이 없으니 갑자기 돈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은 일 일수 있다. 그래서, 핑계 삼아 고작 한다는 얘기가 아침에 일어나긴 했는데 딱히 할 일이 없다는 말로 둘러댄다. 그래서 자꾸 돈을 써보아야 한다. 먹어 본 자가 먹을 줄 안다는 말은 언제나 새겨야 할 첫째가는 金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권력자가 잘 나갈 때 메멘토 모리를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나이가 지긋해지면 가진 돈의 사용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돈은 필요한 곳에 있어야 먹거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메시아는 이미 오셨다. 평범한 우리는 거창한 소명을 받고 세상에 발을 디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부처님께서도 <숫타니파타>를 통해 인간이란 원래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며 그렇게 순수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가르침을 주셨다. 조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도 넉넉히 이해하신단 말씀 아니겠는가! 자식만을 위한 일념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태어난 곳을 향하여 회귀하는 연어를 닮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연어와 달리 죽은 인간의 몸은 아무 곳에도 쓸데가 없다. 처절한 모습으로 희생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들이 지레 겁을 먹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은 시간은 없지만 돈이 많고 스페인사람은 시간은 많지만 돈이 없다고 쓴 기사를 보았다. 두 경우 모두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나마 쓸 수 있는 여력을 지녔다 함은 다행일 수 있다. 다만 이제부터는 너무 성장, 증대, 창출 등에만 비중을 두어서는 곤란하다. 환경문제에도 눈을 돌리고 어디서 연주회를 열고 전시회를 개최하는지 검색해 볼 때다. 맛집 지도 역시 수시로 살펴야 한다. 가성비만 내세우지 말고 “가심비”를 따지란 지적은 타당하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제 발로 걸어가 돈에 묶이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육십이 넘었다면, 돈을 셀 수 있으면 진정한 부자는 아니다는 등의 말에 현혹될 시기는 이미 지났다. 일부러 존재감을 드러내려 노력해도 있으나 마나 한 뒷방 신세가 되기 쉬운 나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항상 자상하고 기분 좋은 모습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자신을 위해 적절히 소비하고 여력이 있거든 주위에 베풀 일이다. 대책 없이 낭비하란 건 아니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돈을 쓰지 말고 맡기라고만 말하는 은행이나 보험사등의 그럴싸한 권유에 혹하지 말고 기대 여명을 감안해 금액 배분을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팔십을 넘어서면 병원비 외에는 고려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돈 쓸 힘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일관적이지 않고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됐다고 말한다. 구두쇠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베풀면 그런 소리 듣는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인생이란 어느 날 밤에 잠들었다가 영원히 잠들지도 모른다. 삶이 이처럼 허무할 수 있는데 길지 않은 여생을 허투루 보내면 곤란하다. 삶은 숙제가 아니라고 했다. 세상 떠날 때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경험해 보아야 할 그 무엇이다. 나이가 들수록 물건 말고 경험을 사라고 권유한다. 지극히 타당하다. 한편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사람은 없다. 오직 내가 있어야 옆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알뜰하게 챙길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경지에 도달한 성인이거나 바보, 둘 중 하나다.
어떤 사람을 알아보려면 그가 시간과 관심, 돈을 어디에 쓰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너무 교과서적이다. 차라리, 젊은 시절 약간은 불량했던 나의 인생 선배가 한 말이 더 다가온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데 까지 경험해 보라”라고 말하곤 했다. 이 말은 돈이 아깝다고 모으려고만 하지 말고 바로 현재에 충실함과 동시에 시야를 더 넓혀 세상을 관조하고 경험하라는 것이다. 고작 나를 위한답시고 보양식, 영양제 따위나 찾지 말고 두 발 성할 때 움직여야 한다. 더 나이 들면 시도 때도 없이 마려운 소변 때문에 여행은 언감생심이고 동네 마실마저 쉽지 않다.
과도한 돈을 남겨보라! 간신히 숨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서 지겹도록 관리해 주는 병원과, 상속지분을 다투는 자녀들의 변호사만 살찌울 것이다. 지금부터는 당신의 여윈 영혼이 살찌게 하는데 투자하는 게 급선무다. 아끼고 여투겠다는 관성 때문에 돈을 쓰겠다는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다음의 글귀를 암송해 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마지막에 입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고, 게다가 들고 갈 이삿짐도 없다” 그럼에도 돈, 돈 한다면 그는 어떤 특효약도 소용없는 외계인일지 모른다. "돈 버는 놈 위에 쓰는 놈, 그 위에 노는 놈" 있다는 말을 뒤늦게 들으면 저승에서 화가 치밀어 오를지 모르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그럼 필자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의미 있는 소비를 하는 사람들 근처에라도 가려고 세간살이 다운사이징을 적극 검토 중이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다. 최근 책을 읽고 감명받은 글귀를 소개한다. 70대 중반에 화단에 데뷔하여 충만한 삶을 살다가 떠난 미국 할머니 화가 <모지스>가 한 말이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먼 나라 할머니의 삶을 닮아가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