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이야기에 정색하는 사람들

by 디딤돌

“삼류(三流)급 정신과 하찮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은 참을 수 없다” 고 말한 사람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 미켈란젤로의 말이다. 독보적인 예술가답게 그의 성격은 독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 절대권위를 가졌던 교황에게도 작가로서의 할 말은 다했다고 한다. 실력이 없었다면 힘든 상황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의 뜻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작품 구상과 작업만이 88년 인생의 전부였던 그에게는 세속의 하찮은 이야깃거리에 자신의 영혼을 할애할 의사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현상은 일상에서 쉽게 관찰된다.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한 분야에 모든 걸 쏟아붓다 보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각종 영역에서의 천재들은 특이하고 괴팍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일반인의 시선에는 그들의 에너지 배분 방식이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비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저잣거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사사건건 참견하며 살았다면 기념비적인 유산을 후대에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평범한 우리들은 많은 곳에 에너지를 배분해야 생존할 수 있다. 여기저기 씨를 뿌려놔야 싹이 틀 확률도 높아진다.


야생 상태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무리를 지어 어울려야 유리하다는 걸 알았다. 함께 있게 되면 상대의 감정도 살피고 자신의 욕구도 적절히 제어를 하는 경우라야 집단에서 밀려나지 않을 수 있다. 달갑지 않은 얘기일지라도 속마음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재주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친화력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무표정한 원시시대의 천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한 성격이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미켈란젤로 스타일’이 제법 되리라고 추정한다. 수다를 잘 떨면서 의미 있는 글도 써낼 수 있다면 바랄 나위 없다 할 것이다. 아쉽게도 현실에선 이런 멀티플레이어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유명작가가 매우 사교적이라는 기록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다정함을 잃어야 울림이 있는 글이 나온다. 고 표현하면 너무 과한가?


위대한 작품의 소재는 해당 작가의 가슴속에서 일정기간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때 옮겨 적은 글에서 심오한 내용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울림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색과 고독에 더 많은 에너지를 태울 수밖에 없다. 나는 언변이 지나치게 화려한 사람치고 내공이 깊은 경우를 보지 못했다. 자본시장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CEO가 이끄는 회사들이 종종 퇴출되고 있다.


인생을 줄타기에 비유한다. 고도의 조절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한다.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은 내가 가고 싶은 길을 택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불만이 있다. 모든 게 어중간해서다. 천재는 아니고 그렇다고 세속형도 아닌 경계인처럼 느껴져서다. 소소한 어울림을 부러워하면서도 사색에 대부분의 마음을 빼앗기는 그야말로 경쟁력 없는 존재라서 그렇다.


성격은 타고난다고 했다. 혹시 주위에 고독과 사색을 즐기는 유형이 있거든 살갑지 않은 사람이라고 타박 말고 그들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한 가지 확신하는 게 있다. 시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쁜 마음을 가졌을 리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맛깔난 수다로 기쁨을 주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대신 영혼을 어루만지는 글들을 선사할 것이다. '생각하고 고독해야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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