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 인간? 삼각형도 대만족

by 디딤돌

십여 년 전 영국을 여행한 적이 있다. 버스기사가 기념품 판매점 앞에 우리 일행을 세웠다. 새로운 세상 구경도 할 겸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위기는 영국 답게 차분했다. 검은색 정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띈다. 신사의 나라라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살펴보니 머리는 대충 삭발한듯하고 용모가 거칠어 보이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보였다. 젊은이 특유의 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현실을 체념한 듯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만 깊게 마시고 있었다.


영국이란 나라를 막연히 동경하였던 터라 내가 본 현상이 궁금해졌다. 여행가이드에게 물으니 돌아온 답이 의외였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민자 자손이거나 신분상 제약으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한계 지을 수밖에 없는 신세라는 말을 했다. 그의 설명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출생했지만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믿음에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예와 결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 젊은이들도 미리 자포자기하는 듯한 현상이 싹트기 시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여 걱정이 된다. 그들 부모세대는 IMF와 금융위기로, 자신들은 서너 해 전 코로나 팬데믹 소동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극복할 수 없는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울어진 운동장, “넘사벽”이란 신조어들이 나타났다.


극단의 경쟁과정을 거치고 성장한 젊은이들은 소셜미디어와 한 몸이 되어 있다. 접속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대상을 발견하게 된다. 한 때 <육각형 인간>이란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외모, 성격,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여섯 개 요소가 어디 하나 모난데 없이 완벽하게 갖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팔방미인이나 다재다능쯤은 훨씬 뛰어넘는 조건이 아닌가 한다. 사회 구성원을 서열화하는 데 있어 새로운 측정도구가 나타 난 듯하여 씁쓸하다.


여섯 가지 요소를 살펴보면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척도는 아예 없는 듯하다. 전부 우연히 주어진 것들로 보인다. 나는 육각은 고사하고 ‘무각’이나 다름없는 조건에서 출발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두세 가지 근처에 간 것 같은데, 굳이 비유하자면 선의 길이가 제각각 다른 아주 작은 삼각형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나마 나의 경우는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청년이었던 시절에는 근면 성실만 해도 중간은 했다. 하지만 요즘 사회는 틈이 촘촘하여 기회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좌절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인생선배로서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안타깝다. 식상하고 공허할 수 있지만 다음의 말을 새겨보기 바란다.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으라는 뜻이다. 신분제 사회가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오히려 결핍을 알아야 인생의 부침에 제대로 적응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수용하되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불굴의 노력이 필요하다. 쓸데없는 비교를 일삼으면서 부러워하거나 질투심에만 불타는 시선은, 안 그래도 취약한 자신의 운명을 더 깊은 낭떠러지로 등을 미는 결과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겉보기에는 모든 걸 갖춘 것처럼 보일지라도 단언컨대, 신이 아닌 한 사람에게는 완벽함이란 없다. 위로가 될까 싶어 예를 든다. 중세시대 이탈리아 문인이었던 <폴리찌아노>는 동시대 사람 인문주의자 <미란돌라> 백작을 두고서 이렇게 평했다. “자연이 주는 모든 선물을 내면에 모아 놓은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말 그대로 중세시대 판 육각형 인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백작은 31세까지만 살았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악조건 속에서도 목표를 이루어 내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강인한 체력을 기르고 자신감을 더하면 삼각형 이상의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를 제외하면 일반인의 외양은 도토리 키 재기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리더들을 보라! 외모가 훌륭하여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집안이야 자신의 세대부터 일으켜 세우면 될 것이다. 도전을 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자산은 선물처럼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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