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 중 하나가 고종명(考終命)이다. 천수를 누리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말한다. <보이저>호처럼 머나먼 우주로 편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남기고 싶은 말 다 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이승에서의 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한데 예부터 이처럼 우아한 풍경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오복 중 하나로 자리를 꿰찼을 것이다.
삶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피골이 상접한 육신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이런 모습을 두고 '인생 예찬'을 읊은 시를 본 적이 없다. 끝이란 게 원래 그렇다. 우리가 ‘늙음이란 추(醜)하다’는 상(象)을 스스로 지은 후 편견을 가져서 그렇지 말년의 초라해진 육신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 부끄러운 일 또한 결코 아니다. 치아를 잃으면 아름다움이 홀연히 떠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마지막 모습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인생 끝 즈음은 세상에 신세 좀 진다고 생각하는 편이 바람직해 보인다.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만에 죽을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 전생에 큰 공이 있는 경우만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웰-다잉이란 꿈에 가까이 가기 위해 유일한 방도로서, 덜 아프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평소에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정도다.
인명은 재천이다.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게 여러모로 유익해 보인다. 세상엔 억지를 부려본들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걸 우리는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가족력이 있다면 발병 가능성에 대비하여 사전 검진을 철저하게 받을 일이다. 한 발 나아가 나이가 들면 영혼이 영롱할 때 이별 여행 준비를 차근차근 이행하는 게 모두에게 이롭다. '떠나고 나면 알아서들 하겠지'라는 자세라면 마지막 양심마저 내팽개치는 미필적 고의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은 이렇다. 스스로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면 서둘러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이 첫째다. 그래야 자식도 눈치를 채고 마음의 준비할 수 있다. 이는 나의 모친을 통해 배운 인생 지혜다. 당신은 떠나기 얼마 전 귀중품을 정리하여 며느리에게 전달했다. 매년 농산물 종자로 사용하던 씨앗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지금도 나의 아내는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팥을 꺼내 간혹 팥죽을 쑨다. 모친을 추억하는 일은 덤이다.
나에게는 쓰라린 경험이 있다. 부친께서 갑자기 건강 상태가 나빠져 체중이 감소하면서 틀니가 맞지 않게 되었다. 당신은 헐렁해진 보철물의 상시착용이 불편하여 빼놓은 상태로 지내시다가 갑자기 섬망상태로 빠졌다. 마지막을 직감하셨는지 남기고 싶은 말을 서둘러하셨으나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동안 하지 못한 얘기도 있었을 것이고 아쉽다는 말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의 마지막 말은 무심하게 허공에 흩어졌고 그게 끝이었다.'
우리 기성세대부터는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떠난 후 유족이 나머지 매듭을 쉽게 풀 수 있도록 헐렁하게 해 놓을 필요가 있다. 웰-다잉의 참 뜻은 어떻게든 이루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꿈에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 과정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