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한다. 선인들이 남긴 지혜의 정수나 다름없는 말들의 의미도 퇴색하거나 변색되고 있다. 이 풍진세상(風塵世上)을 살아오면서, 나름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변주하고 싶은 속담의 예를 들어보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요즘은 튀어야 알아본다. 무색무취하면 잊힌다. 정을 맞는다는 게 요즘은 제거가 아니라 발탁이라고 해석하면 무리 없어 보인다.
부잣집 삼대 못 간다. 풍부한 지원을 받고 자란 부자의 자식이 더 똑똑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외려 가난이 대물림된다.
한 우물을 파라. 기름이 나오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두어야 한다. 아닌 건 아니다. 그간 들인 공(功)에 미련을 가지면 대사를 망친다.
개천에서 용 난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게 맞다. 개천은 지렁이가 자라는 곳이다. 만약에 용이 나왔다면 필시 중도에라도 큰 못으로 옮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무너진다. 수십 년에 걸쳐 지켜온 민주주의 체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이번 비상계엄을 통해 동 사실을 목도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반만 맞다. '스토커'에게는 틀리다. 계속 찍어 댔다간 교도소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오히려 집착에 빠졌다고 꾸지람 듣기 십상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낙(樂)만 혼자 오지 않는다. ‘골病’이라는 녀석을 친구 삼아 같이 온다. 겨우 살만해지니 중병으로 인해 서둘러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삶의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한계를 미리 설정하여 노예근성을 심어주는 말이다. 시도조차 가로막는 건 바른 가르침이 아니다. 오르다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경험해 보도록 하는 게 맞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천재가 대부분 이긴다. 재능에 있어 일반인의 한계는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천재에게도 구멍이 있다. 역사책을 보건대 천재가 인간관계가 남다르다거나 천수를 누렸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세상은 어느 정도 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