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에 대해 상종하지 못할 부류라고 단정 짓고 비난하기 쉽다. 나는 노인세대에 발을 디뎠지만 태극기부대의 노인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고백한다. 나의 눈에는 그들은 아무짝에 쓸모없음을 넘어 유효기한이 지난 폐기처분 대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내 생각 역시 극단적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통하여 그분들은 틀렸고 내 생각만 옳다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고민해 본다.
왜 그들은 장사치로 차갑게 변해버린 미국에 대해 미련을 내려놓지 못하고 짝사랑에 몸 달아하는가?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는 일본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련한 향수를 느끼며 왜 아직까지 그들의 소매를 붙잡으려 하는가? 좋으나 싫으나 지리적으로 함께 엮여있어 갈등이 불가피했던 중국에 대해선 그토록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서는 노인의 범위를 구체화시켜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그들이 갖고 있는 정신세계를 나만의 시각으로 탐험해 보고자 한다.
동 세대의 특징은 개인보다는 국가우선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진보정책의 산물인 기초연금 등의 복지혜택을 향유하면서도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진보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 자잘한 情에 大義를 바꿀 수 없다는 자못 진지한 태도다. 심지어 지도자가 도덕적이지 않아도 강력한 국가를 이끌어 간다면 어지간한 하자는 눈감아 주는 아량도 가지고 있다. 12.3 계엄을 통해 비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윤석열’의 인품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신념(친 미일, 혐 중국)이 마음에 들었기에 그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들의 눈엔 미국은 신과 동격이다. 수탈의 대명사 일본을 패망시켜 우리에게 독립이란 선물을 주었고 한국 전쟁 중에는 유엔군의 주력이 되어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주었다. 철저하게 파괴된 국토의 재건을 위해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나라였으며 전후에도 주한미군이 지속적으로 주둔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의 잠재적인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비록 최근에 장삿속을 드러내는 그들에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긴 하지만 여전히 신적인 지위로서의 생각은 흔들림이 없다. 그들이 시위현장에서 미국국기를 들고 환호하는 이유다.
동 세대에게 일본은 애증의 양면이 있어 보인다. 일본에게 당한 수모도 있지만 양지도 체험한 경험이 있다. 비록 2등 국민 신분이었지만 무능한 조선보다는 일제치하에서의 삶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무능한 조선 신민보다는 투표권 없는 일본 신민으로서의 대우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밥을 굶지 않았고 제3 국으로부터의 무시도 덜 받았다. 독립투쟁만 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지낼 만했던 것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잘 나갈 때 하급관리를 주로 담당했던 조선 사람들이 더 설레발을 쳤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자주적이진 못했으나 일본 덕에 콩고물을 얻어먹은 경험이 있어 일본이 나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들도 양심은 있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가령 위안부 문제 등에는 겉으로 공분하는 척 하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개인의 일탈로 보는 것 같다. 일본으로부터 직접적인 수혜를 받은 집단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뉴-라이트 史觀이 있는 이유다.
중국에 대한 생각은 편향이 극단적이다. 그들의 인식 속엔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 민족을 괴롭혀온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양국 상호관계의 긍정적인 면은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우두머리에게 평생 시달려온 조무래기의 피해의식과 비슷해 보인다. 역사적으로도 중국과는 전쟁이 많았고 우리가 종속적인 지위에 있었기에 국민 누구에게나 유전자처럼 새겨진 일종의 피해망상증이 유독 강하게 남아 있는 세대다. 근대역사만 들춰도 청나라의 내정간섭, 한국전쟁의 중공군 개입, 북한과의 밀착으로 핵보유를 가능하게 하는 등 그들을 예쁘게 봐줄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라인 것이다.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발전 원동력 중에는 중국과의 교역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애써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먹거리보다 理念이 먼저다. 남북통일을 가로막은 불구대천의 원수일 뿐이고 상종 못할 ‘때 놈’에 불과하다. 화교들이 유독 한국 땅에서만 고전한 이유일 수 있다. 그들에겐 미국과 일본만 있으면 된다. 중국의 현실적인 중요성을 얘기하려들면 그들의 눈엔 상대가 온통 빨간색의 생명체로 비칠 뿐이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주축으로 활동했을 무렵의 국가는 온 국민을 반공사상으로 세뇌시키는 주체 역할을 했다. 자연스럽게 ‘무찌르자 공산당’이 국민 모두의 뇌 중앙에 심어졌다. 급기야 요즘에는 중국인 선거개입, 중국인 간첩 활동 색출 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인 것이다.
나는 그들이 중국을 불신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만큼 실제적으로도 중국은 대국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경우(한한령, 사드배치 갈등 등)가 허다한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공산주의 종주국이랄 수 있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기치 아래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한 이력이 있어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다른 세대보다 크다. 동시에 이 세대의 특징은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산전수전 겪은 세대’라는 자부심이 있는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세상이 변했다는 말을 꺼내면 불같이 화를 낸다.
우리 역사에도 상호 간에 대화가 안 된 사례가 있었다. 바로 성리학을 신봉하는 유교원리주의자들이었다. 왕권과 기득권 강화를 위해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았다. 조금만 유교 경전 해석을 달리하면 사문난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고 불교, 도교, 천주교 등을 이단이라 하여 철저하게 배척했다. 이는 조선의 사상이 완전히 얼어붙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망국의 비운을 맛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할 것이다. 반면 성조기를 드는 사람들은 기득권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집권자가 독재를 하든 말든 강력한 지도력이 있는 강한 나라가 필요할 뿐이다. 그들에겐 일사불란한 나라가 ‘이상향’이다. 특수한 환경과 세뇌가 빚어낸 독특한 세대인 것이다.
나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길거리를 떠도는 노인들을 이해는 할지언정 동조는 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 자신을 돌아보며 관대해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세상의 한 부분 밖에 볼 수 없음을 받아들이면 후대들의 걱정을 상당 부분 덜 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