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 離巢

by 디딤돌

새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소"란 단어는 조금 생소할 수 있다. 한자를 풀이하면 새끼 새가 둥지를 떠난다는 뜻이다. 장마가 시작되는 이맘때쯤이면 어린 새끼 새들에게 조생(鳥生:새의 생애란 뜻으로 썼다) 처음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다. 둥지를 떠나면서 처음으로 '공포의 날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TV 다큐방송을 통하여 새들의 이소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도 있다. 나는, 십 층은 넘어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부화된 후 성장을 마친 청둥오리 새끼가 지상으로 낙하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날개가 작아 공기의 부력을 이용하지 못하고 거의 추락하다시피 하면서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용기 있는 녀석은 어미의 신호에 따라 거침없이 지상으로 몸을 던지지만, 겁 많은 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당황해하는 모습에 가여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본 적이 있다. 현역시절 집단강하를 하던 중이었다. 이탈 수신호가 떨어지면 과감하게 수송기 밖으로 몸을 던져야 하는데 한 대원이 전날 밤 꿈자리가 이상했었는지 열린 문 양쪽 끝을 잡고 강하를 거부했다. 안전요원이 등을 두드렸으나 막무가내로 버티자 요원 두 명이 그를 문밖으로 떠밀어 냈다.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버텼겠지만 육신은 창공으로 던져졌다. 이처럼 죽기 살기로 버티던 가여운 청둥오리새끼도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심청이처럼, 초개처럼 몸을 던졌다.


그동안 천적을 피할 수 있는 장소적 이점은 누렸으나, 고층에서의 집단 탈출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행하는 죽음의 의례처럼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거저 성체로 자라나는 게 아니다.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집 인근에 사는 까마귀나 까치의 울음소리가 제법 신경질적으로 들린다. 둘 중 하나의 이유 때문 일 지도 모른다. 새끼를 강하게 훈육시키면서 화를 내는 것일 수도 있고, 머지않아 자식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아쉬움일 수도 있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어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잠재적 위험이 있는 대상에게 경고를 하는 행동일 것이다.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가끔 까마귀에게 뒤통수를 쪼인다는 기사가 관심을 끈다. 괘씸하지만 자식을 위한 본능이려니 하고 우리가 이해해 주면 어떨까 한다.


우리 속세의 현실은 조금 달라 보인다. 삼, 사십이 넘은 자식이 둥지 밖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으려는 '선택적 이소'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여러 이유가 있어 그러겠지만 자연의 순리에 부합해 보이지 않는다. 새둥지는 부화를 하는 곳이지 성체가 되어서까지 사는 곳이 아니다. 삶이 유한하듯 모든 것에는 유효기한이 있다. 부모가 제공한 전세방도 만기가 되면 비워 주어야 한다. 때가 되면 낡은 둥지는 태우고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스스로 만들 필요가 있다. 새로운 둥지가 비록 누추하더라도 오롯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기쁨 역시 쏠쏠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적절한 시기에 맞춰 이소를 하는 건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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