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5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참전했던 용사들 중 참혹한 전선에서 스러지지 않고 천우신조로 살아남은 영웅들마저도 이제는 생존해 계신 경우가 드물 것으로 추정된다. 소년병이나 학도병 신분으로 전장에 투입되었던 분들도 90세 전후가 되었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들의 자식세대는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 가물가물 해지고, 손자세대는 먼 옛날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때로는 망각도 역시 중요하다고 했으니 어찌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 글에서는 한국전쟁 개전 첫날 별이 된 국군전사자를 추모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갑자기 남북한 간 전면전이 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기록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곧바로 한반도 중심을 가로지르는 총길이 312Km에 이르는 38도선이 생겨났다.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북대치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 1948.8.15 에는 남한 정부가, 같은 해 9.9 에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
양측 모두 분단을 넘어 한나라로 병합하고자 남쪽은 북진통일, 북쪽은 적화통일을 외치면서 대치상태의 긴장감은 높아지기만 했다. 나 역시 학생시절에, 당시 군복무 경험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최전방에서 경계근무를 소홀히 했다가 한밤 중 분대원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예전에는 자식을 군대에 보내면서 어머니들은 모두 울었다. 크고 작은 사고와 충돌로 귀한 아들이 죽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400회 이상의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다고 하니 그분의 얘기가 허튼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육탄 10 용사"로 인해 당시 널리 알려진 개성 송악산 고지점령 5.4 전투는 1949년에 일어났으며 국군 39명이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폭풍 224"는 중무장한 조선인민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1950.6.25. 새벽 4시 전격적인 남침을 강행하면서 사용했던 '암호'다. 전면전이었음에도 처음에는 늘 있었던 국지전 정도로 오판했던 국군은 응전태세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속절없이 밀려났다. 인민군 탱크 길목이라 불렸던 전곡, 문산, 봉일천 일대에서 개전 첫날 전사자가 속출했다. 그나마 영웅들의 육탄방어가 없었다면 전쟁 당일 수도 서울이 적군의 수중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사흘을 버텨 준 덕분에 그나마 반격을 위한 정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사진 속 묘비의 주인공은 개전 첫날 문산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분들 중 한 명인 ‘하사, 차재호’ 님이다. 3년여 전쟁기간에 걸쳐 발생한 국군 사망자 및 실종자 수는 16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 11만여 명은 유해를 찾을 수 없거나 당시 감식 수준으로는 사망자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다. 해당 묘비 주인은 불행 중 다행으로 시신이나마 수습될 수 있어서 양지바른 이곳에서 영면에 들 수 있었다. 전사자 시신의 신원을 알려주는 명찰이나 군번줄이 없었다면, 묘비도 없이 어른 손바닥만 한 조그만 위패를 벗 삼아 현충탑 지하 밑에서, 조국 어딘가에 묻혔을 시신 없는 동료 영혼들과 함께 한 뼘 크기의 보금자리를 할당받으셨을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은 인류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숙명이 아닐까 한다. 끊임없이 지구촌 여기저기서 죽이고 죽고 있다. 심지어 "평화마저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동물처럼 인간들은 싸우는 걸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가 보다. 우리 역시 전쟁을 사양하지 않겠다는 강경파들이 있다. 물론 이런 부류들은 자신과 가족만큼은 희생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럼, 누구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인가? 대북 강경책은 상황에 따라서 필요할 수 있지만 적정선에서 관리해야만 할 숙제다. 일단 전쟁이 나면 모든 게 파괴된다. 폐허만 남은 곳에서 "피로스의 승리"를 쟁취한 들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건 전쟁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75년 전처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고 틈을 보이면, 바로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묘비는 절절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정도의 헌시(獻詩)로는 호국영령들을 위로하는 데 있어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무엇이든지 잊어버리면 곤란하고 '선택적 망각'이 필요하다. 영웅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며, 우리 각자의 DNA에 새겨 숭고한 기억으로 영원히 남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