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창백한 푸른 점

by 디딤돌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코스모스》란 책을 보면 지구를 빗대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Pale Blue Dot” 우주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살고 있는 행성이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구 속의 나! ‘다시 한번 점’에 불과하다. 존재감 ‘제로’라는 느낌으로 연결된다. 나는 이를 약간 비틀어 큰 고민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위로쯤으로 이해하고 싶다.


불가의 설법 중 이런 비유도 있다. “내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 이 말을 곱씹으면 본래 의미와는 달리 뭔가 나란 존재에 대해 ‘특별함’을 느끼게 만든다. 결코 자신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육신과 영혼이 우주로부터 왔으니 우리 개개인은 광활하고 위대한 우주의 분신일 수도 있다. 몸의 대부분이 탄소알갱이라 하지 않는가? 삶 속에서 자존감이 떨어지거든 새겨볼 만하다.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코앞인데 더위는 짐 쌀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진이 빠진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날들의 연속이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고 있지만 ‘지금 한반도 상공은 두꺼운 솜이불이 이중으로 덮여 있는 형국’이란 괴상한 말까지 듣는다. 그럼 한겨울에는 얼려 죽이려고 홑이불이 덮일라나? 예측불허의 기후변화 때문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존재가 ‘창백한 한 점이든, 광대한 우주든’ 숨 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세상살이가 그렇고 그래서 머리가 복잡한데 열기까지 합세하니 뇌가 뜨거워져 살 수가 없다. 인류의 체온을 36.5도가 아닌 40도 정도로 올려야 그나마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불의 신”이 아니라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한다. 아마 나의 남은 생 안에는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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