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급제

by 디딤돌

나는 집권 이후의 이재명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도 좋고 상황파악 및 공감능력이 뛰어나 보인다. 그럼에도 내 눈에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저신용자에 대한 고금리 적용에 대해 보통사람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견해를 피력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어려운 시기를 돌아보며 연민의 정이 발동한 건가? 전 국민을 아울러야 하는 최종책임자의 시선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금융계급제란 말이 나온 배경을 들여다보면 굳이 저소득층과 저신용자를 구별하기 싫은 정치적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하면 저신용자라고 오해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저소득이라 하더라도 고신용자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설령 밥은 굶어도 세금, 공과금이나 은행이자는 먼저 내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저소득자와 저신용자는 분명하게 구별하고 차등대우를 할 필요가 있다.

대출금리 결정 원리를 설명하겠다. <조달금리+적정마진+대손율+개인신용도>를 감안하여 정한다. 대손貸損이라 함은 빌려주고 못 받은 돈이다. 돈을 떼일 일이 없다면 금리는 낮아지게 된다. 즉, 내가 돈을 갚지 않으면 타인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연기'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렇다. 부채탕감을 받았다면 톡톡히 신세를 졌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성실한 이들이 그만큼 이자로 부담한 것이다.

포용금융이 신조어인지는 모르겠는데 동물이 아닌 금융은 원래 온기가 없고 차갑다. 그게 정상이다. 매번 개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적용기준을 달리한다면 금융제도란 시스템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포용금융이란 말은 아름답지만 금융권 밖, 정치권 혹은 자선단체에서나 담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회라는 틀 속에서 관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할 생각이 있다면, 신용이 낮으면 금리가 높아야 한다는 건 진리라 해도 무방하다. 약속을 제때에 지키지 않는 경우마저 유야무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면, 누가 귀찮은 약속을 이행하려 들 것인가? 신뢰란 용어는 사라질 것이다. 믿지 못하면 거칠어지게 되어 있다.

극단적인 예지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거액의 세금을 포탈하는 부류가 있다. 그들이 대출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어떻든 고금리를 부담해야 할 저신용자 임에 틀림없다. 도둑전기나 쓰고 거액의 전기료를 체납해도 마찬가지다. 합당한 카드대금, 월세나 통신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높은 신용점수를 줄 수 없다.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저소득자의 경우에도 빚 갚는 순위를 제일 위에 두고 사는 성실한 사람 역시 부지기수다. 자기 먹을 것 먼저 챙기고 의무이행을 등한시하는 이들 때문에, 성실히 상환하는 이가 더 높은 고금리를 부담해야 한다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 나는 자본 옹호자도 기득권도 아니지만 '모럴해저드'에 빠진 이들에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없다. 책임은 스스로 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진 사람에게 포용금융은 일종의 자선이 될 수 있다. 성실하지만 어려운 층에게 포용금융은 두 번 죽이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책임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집단의 저신용자에게 배려를 해야만 한다면, 그전에 반드시 선량한 저소득자에게 별도 보상을 먼저 하고 여력이 남을 경우 포용이든 시혜든 베풀어야 정상적인 사회라 할 것이다. '착하면 손해' 본다는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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