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베개

by 디딤돌


팔베개는 경우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어릴 적 엄마, 할머니의 팔베개를 베고 누우면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인간 육신의 일부가 아닌 포근한 솜덩어리다. 꿈나라로 가기 싫어 발버둥 쳐 보지만 이내 눈꺼풀의 중력을 이겨내지 못한다. 달콤한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삶도 부지기수다. 운명이란 용어만이 '사랑의 결핍'이란 슬픔을 설명할 수 있다.

이성 간의 팔베개는 꿀처럼 달콤하다. 연인의 머리는 무겁지 않고 솜사탕보다 가볍다. 내 신체의 일부 같다. 오랫동안 팔을 내주어도 저리는 법이 없다. 사랑을 하면 치러야 할 죄 값으로 설령 '시시포스의 고통'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사랑은 기쁘게 손해 보는 것"이란 그럴듯한 말에 동의한다.

달콤하기만 했던 솜사탕이 갑자기 돌덩이처럼 무겁다. 머리가 아닌 '대가리'로 느껴진다. 각자 거울을 쳐다보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겪는 현상이니 '쫄'필요는 없다. 별일 아닌 걸로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들랑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라. 영문도 모르고 화들짝 놀라는 일이 없도록.

슬픈 모습도 존재한다. 유효기간이 무한정일 것 같았던 콩깍지가 벗겨지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정상으로의 환원은 나쁘지 않지만 '콩깍지로 인한 사리판단 멍청 증세'는 가급적 서서히 회복되는 게 좋다. "살짝 미쳐야 인생이 즐겁다"라고 필자가 소개한 바 있다. 자기 팔을 베고 잠이 들면 꿀이 아닌 침이 흐른다.

팔베개가 여유와 친구 할 때 볼 수 있는 낭만적인 모습도 있다. 한가로운 시간에 풀밭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서 맑은 하늘을 쳐다보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공활한 하늘은 경외심 자체다. '창공의 패션쇼'라도 할 것처럼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나타나는 게 있다. 저거는 양떼구름, 새털구름, 뭉게구름...

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다. 어딘가 골방에 박혀 간신히 자신의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드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종류의 팔베개와 함께 하고 있는가? 세상이 주는 시련이 만만치 않더라도 어린 시절의 팔베개 느낌으로 회귀할 수 있어야만 한다. 냉기가 아닌 온기가 흐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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