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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꿈과 기다림이 없다면? 그럼 왜 살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나는 기다리는 게 꽤 많다. 머지않은 미래에 전원생활을 해보는 일, 앞으로 태어 날 손자 손잡고 여행하는 일, 에세이 책을 출판하는 일 등등 꿈이 많다. 기다림이 반드시 성취되는 건 아니다. 아슬아슬하기에 더 소중해 보인다.
무엇을 기다릴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어느 이유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현실의 제약과 고통을 견디게 하고 지금보다는 나아지리라는 미래의 가능성에 기댈 수 있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인간관계도 번갯불에 콩 튀듯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로 지켜보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만 더욱 돈독해진다.
‘기다림을 산산이 깨뜨려 버리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누군가 곁에 있다면 더욱 자신을 잘 지킬 일이다. 먹이를 구하러 나간 부모가 죽기라도 한다면, 새끼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무리 기다려 본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변심, 배신, 속임도 기다림의 큰 장애물들이다. 나는 선의로 맡겼는데 상대는 처음부터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큰 낭패다. 기다리다 지쳐 분노와 절망을 맛보게 된다. 요즘 사회문제인 전세사기가 대표적인 예다. 범법행위자는 피해자와 가족의 슬픔이 얼마나 클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기다려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세상일의 대부분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 제대로 성숙되려 하면 인고의 시간은 반드시 동행하겠다고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데도 뜸을 들이는데도 내 차례가 돌아오는데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씨를 뿌리고 지극정성 보살핀 후라야 싹이 나는 이치와 같다. 기다림이 없이 생긴 결과물은 가볍다.
인내를 했기에 민주화를 쟁취했고 경제발전의 과실도 취할 수 있었다. 흐릿한 불빛으로만 보였던 희망을 믿었기에 참고 견딜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지금은 양극화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지만 지혜를 모으고 기다리면 바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상식에 맞는 배분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반대로,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건 현명하지 않다. 자책할 이유도 없다. 나를 선택할 자유는 상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인연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훨씬 편해진다. 아쉬워하는 마음은 내 욕심일 뿐이다. 혹시 떠나겠다는 이가 있으면 미련 없이 놓아주라!
나는 감정이 무딘 편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조그만 일에도 감동하려고 노력 중이다. 적당한 두근거림이 있어야 살맛이 난다. 새 가족이 될 며느리는 어떤 사람일까? 내 자식과 잘 지낼까? 손자를 보게 해 줄까? 나는 어느 선까지 그들의 삶에 관여하지? 막연한 기다림이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나이가 들어도 밝게 살려면 “기다림의 미학”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제는 멈춰 서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전철 내부가 복잡하거든 그냥 보내고 다음 차를 타면 된다. 일선에서 뛰는 젊은이들이 숨을 편히 쉴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일 아닌가?
“기다리면 손해 본다.” 는 생각은 접어두자. 잠깐의 여유를 갖는 것만으로도 얻는 게 너무 많다. 양보했다는 뿌듯함이 생기고 한 번 더 둘러볼 수 있어 옳은 판단을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기다림의 다른 표현은 꿈이기도 하고 여유로움이다.’ 진심을 다해 바라고 노력하면 행복은 이미 내 옆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