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참... 인생 살기 버겁다. 배우처럼 연기까지 잘해야 하니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다간, 예상치 못한 비바람이 먹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 ‘짜-안’ 하고 나타나니까 말이다.
먼저 이로운 척을 살펴보자.
가정의 평화를 위해 배우자나 자녀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해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한다. 그러나 휴화산은 불각시에 터질지 모르므로 언젠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직장의 상사가 바람직한 상은 아니지만 승진과 인사고과를 위해 존경하는 척한다. 이 경우 상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자칫 자아도취에 빠졌다간 보수 없는 자택근무를 종용받게 된다.
부모 또는 가족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힘들지만 세상에 잘 적응하는 척한다. 진정으로 가까운 사람을 사랑한다면 용감한 고백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마음을 모을 수 있으니까.
시류에 편승하는 게 유리한 것임을 알기에 깊은 속마음과는 별도로 나도 그런 척한다. 이 같은 척은 관계를 그럭저럭 유지하게는 하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은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다음은 해로운 척을 보자.
지도자가 권위를 갖추기 위해 위장술을 동원하여 잘난 척하면 유권자는 자칫 속아 넘어가기 쉽다. 하얀 천이 둘러진 장막 속에서 도장 한 번 잘 못 누르면 적어도 사오 년은 솟구치는 화와 소화불량 상태를 감내해야 한다. 화병 전문 정신과와 소화기과 의사들만 신나게 하지 말자.
모르면서 아는 척, 없으면서 있는 척, 잘난 척 등이다.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의 왜곡된 표출”이라 할 수 있는데,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큰 고통이 따른다. 심하게 표현하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척하면서 살고 싶다면 더 이상은 못 말린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재미있어(나만 그런가?) 독자에게 퀴즈를 내겠다. 의사가 치료하기 가장 힘든 환자는? 답은 바로 “아픈 척하는 환자”다. 물론 현명한 의사는 살포시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플라세보(위약) 효과를 노려 가짜 약을 처방할 것이다.
‘~인 척은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 진면목(眞面目)을 보기 어렵게 하는 그림자가 있고 동시에 경박한 모습을 감추는 순기능도 있다. 살다 보면 ‘척하기’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가급적 선의의 척하기가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