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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반란>이 떠오르는 이유

<4>

by 디딤돌
(아귀다툼 형상물/ 네이버)


필자는 "지공거사" 편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공짜를 싫어할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만 헤아리다 보면 전체는 망가지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무임승차 논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젊은 정치인이 동 문제를 제기했다. 명석한 집단들이 아무 생각 없이 정책을 내놓진 않았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표를 의식했다고 본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타당한 면이 있어 보인다.


대한노인회의 예상 가능한 메시지가 나왔다. "망나니들이 신당이 아니고 패륜정당을 만들 거냐"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정치인에 대한 개인 신상공격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해당단체의 성명이 노인들 전체의 생각인양 비칠까 봐 걱정이다. 어른으로서의 품격은 찾아볼 수가 없어 상당히 실망스럽다. 같이 고민해 보자는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물론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나는 특정 정당이나 단체, 정치인을 지지하려는 의도에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님을 밝힌다.


이 문제 제기의 본질은 만성적인 지하철 적자를 해소하여 부담(부채규모가 서울시만 약 18조원에 달한다)을 후대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취지라고 이해하고 있다. 나는 앞서 출산장려 정책에 대한 글에서도 의견을 표명했지만 각각의 이해 계층이 한 발씩 물러서지 않으면 본 사안도 원천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일이다. 공멸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래세대에 대한 현재 세대의 이권 카르텔"이란 말이 떠오른다. 젊은이들은 직시해야 한다. 자신들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야 할 책무가 있다. 그래야 전 국민이 귀를 기울이고 같이 고민하게 된다.


현행 지하철 요금 정책에 대한 각 이해 집단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자.


정치인(지자체장 포함)은 늘 지지표가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산정된 운임을 무시하고 가급적 싼값으로 대중들이 이용하도록 조치한다. 일상이 되다 보니 우리는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권리로 착각한다. 이용자 입장에선 요금정상화는 바로 소득감소로 이어진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교통비만 상승하는 걸 용인하기 어렵다. 아니면 급여가 인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용자들은 언제나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들에게 현재 지급하고 있는 급여가 높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볼멘소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지하철 운영주체가 공기업이라는 구조적인 한계점도 있다. 나름 원가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조직슬림화 등의 조치를 단행하지만 민간 기업처럼 절박함이 없다. 빚을 더내면 될 텐데라는 매너리즘에 어느 정도 젖어있다.


나는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다 보면 지하철 유지 및 보수는 제대로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형사고의 씨를 잉태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한다. 적자누적 문제를 남의 일로만 치부하다가는 빚더미와 멈춰 선 전철(누군가는 전철은 달리고 싶다.라고 낙서를 할 것이다)만 후세에게 넘기는 꼴은 발생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문제는 기성세대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40여 년 이상 지속적으로 운영되어 오고 있는 노인 무임승차 이슈가 매번 불거진다. 심지어는 대상자 본인은 이용하지 않고 가족이 사용하게 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원 취지에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지하철 공사에 이중의 부담을 떠안기는 행위다. 이 모든 <지급 유예 비용은 지하철 운행에 따른 적자 누적이라는 바구니에 쌓인다.> 빚은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현재 상황을 한 가정에 비유하자면 조부모가 능력이상으로 흥청망청 끌어 쓰다가 자식에게 빚을 상속해 주고 떠났고 부모 또한 선친의 빚을 갚으면서 먹고 사느라 쪼들리니 적당히 견디다가 자식세대에게 물려주고 홀연히 사라지겠다는 심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직접적으로 내 자식 일만 아니면 관심 없다는 태도다.


외국인들의 한국 방문 소감 첫마디가 대부분 "대중교통 요금이 너무 싸다"이다. 무언가 대중교통 가격결정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싸게 책정된 만큼의 부담을 무의식 중에 후세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싼 운임이 특정지역 시민의 보편적 복지의 차원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만큼을 다른 부문에서 절약해야 한다.(아니면 세금을 추가로 징수하거나) 방만하게 운영되는 불요불급한 예산(보여주기식 행정에 따른 낭비)을 줄이고 적자해소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빚으로 동 시스템을 지속하겠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나에게 대안을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하겠다.


사용자 부담의 원칙이 맞다. 공짜를 즐기면 누군가(미래세대)는 피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득이 경로 우대 제도를 계속하여 운영한다면 70세 이상으로 하고 혜택기간도 3~5년 정도가 타당해 보인다. “걷기 행복권”은 꼭 지하철에서만 실행 가능한 건 아니다. 승객이 탔든 안 탔든 전기료가 발생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무임승차가 타당한 건 아니다. 고통분담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눈앞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다면 우대제도를 폐지하면 된다. 누구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하듯이 예외를 두어선 안 된다. 노인에 대한 예우도 여건이 되어야 할 수 있다. 지금은 대상이 너무 많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 <황혼의 반란> 편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자기들 몫의 회전이 끝났음에도 회전목마를 떠나지 않고 있는 노인들" 탓에 세상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천만 노인이 뭉쳐 특혜집단화하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바람직하다. 조그만 잇속을 챙기는 것보다 모범을 보이는 게 맞다. 노인들 눈에는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는 젊은이들이 당신의 자식이며 손자들이다. 이들이 누굴 보고 배우며 자랐는지 돌아보면 된다. 소설처럼 눈에만 띄면 죽이려는 젊은이들을 피해 산속을 방황하지 않으려면 어른의 도리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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