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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이 든다는 것

<3>

by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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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없는 동네 재래시장>


누군가의 마지막 과정을 지켜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앞으로 환자가 나와 얼마나 같이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오늘 돌아본 동네 재래시장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교차했다. 설명절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는데도 무슨 일 있냐는 듯 조용하다. 시장을 찾는 이가 줄었기도 하려거니와 호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아 발걸음이 뜸 한 게 아닌가 한다.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지 8년 차인데 지금의 풍경은 너무 변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가게 주인과 흥정하는 사람, 길거리 음식을 맛보며 안면에 미소가 만개한 사람, 호기심에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인파 때문에 협소한 상가골목을 서로 지나치기가 힘들 정도였다.


“골라! 골라!”를 신명 나게 외치던 과일가게 주인장은 맥 풀린 눈으로 대형 TV 스크린만 쳐다보고 있다. 패기 넘치던 청년 생선 장수는 온데간데없고 무표정한 중년 남성이 팔리지 않는 어패류를 뒤적거리고 있다. 떡집 앞에 진열된 맛깔스러운 인절미, 송편 등은 곱게 단장하고 팔려 나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주인 할머니 옆엔 동년배의 친구가 딱 들러붙어 앉아 옛적 처녀시절을 회상하면서 대화를 하는지 두 분의 얼굴은 핏기가 돌고 화사해서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우리 동네는 재개발 때문에 일 년 내내 공사 중이다. 머잖아 그럴싸한 고급아파트가 들어서겠지만 그동안 이 시장을 이용했던 단골들은 어디론가 떠나는 중이다. 재래시장 이용에 친숙했던 수요층이 일시에 사라진 것이다. 새로 완공된 단지에 입주한 주민들은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한다. 배달이 가능하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재래시장과의 궁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젊은 층일수록 식품 위생에 민감하고 환불 등을 중요시하는데 이곳은 즉각 부응이 어려운 곳이다.


시장 상인들도 생존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에누리와 덤 은 신세대에게 정은커녕 오히려 불신을 줄지도 모르겠다. 가격정찰제를 시행하고 원산지를 분명하게 표시하면 어떨까 한다. 위생적인 관리를 해야 하고 접근성 개선을 위해 상인 간 협동하여야 한다. 대형 유통업체와의 경쟁은 필연적이다. 무엇을 특화해야 살아남을지의 결정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깡 촌’에서 성장했다. 상설 재래시장이 아니고 오일장만 있었다. 장 서는 날엔 남녀노소가 들떴다.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는 막걸리 한 대포를 들이켤 생각에 흥이 나고 어머니들은 모처럼 “동동 구루무"를 바르고 콧바람을 쐬는 유일한 날이었다. 철부지들은, 물건을 머리에 얹고 메치고 안고 가는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다니며 이곳저곳에 눈길 주느라 바빴다. 우리 집은 간식거리가 귀했는데 장날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온 물건들을 마루에 풀어놓으면 매번 품목이 비슷비슷했다. 갈치 등 생선 류, 국수, 사탕, 과일, 신문으로 둘둘 말린 제사용 돼지고기 조금이었다. 고기의 비계 부분에 찍힌 파란 도장과, 신문활자가 젖어 고기 표면에 스며들어 있어 이걸 섭취해도 문제없는지 항상 궁금했다. 종이에 돌돌 말린 국수 몇 가락을 씹어보면 별맛 없이 짭조름한 맛만 느껴졌다.


나는 야외 화덕 위에 큰 솥을 얹고 불을 지폈다. 국수를 삶기 위해서다.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지만 멸치 육수에 국수를 넣고 담아낸 '양푼 한 그릇'은 행복 자체였다. 보리와 좁쌀에다 쌀 한 줌 놓고 지은 밥만 먹다가 별미를 느꼈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겠는가? 국수 몇 가락이라도 자식에게 더 먹이려고 당신의 그릇은 항상 허전했는데 이제야 철이 들어 깊은 사랑이었음을 느끼고 있으니 한탄스럽다.


요즘 지방은 전통시장이 관광 효자노릇을 한다고 들었다. 간혹 불미스러운 소식도 듣지만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해 보인다. 한번 돌린 발길은 되돌리기 쉽지 않다. 동시에 오일 시장, 상설 재래시장 모두 명맥을 이었으면 한다. 고달픈 삶을 살지만 최소한 이곳에서 만큼은 '사람냄새'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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