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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거울 앞에 서서 내 몸 이곳저곳을 바라본다. 이제는 뒷머리까지 하얗게 샜다. 그러려니 한다. 머리털이 자꾸 정해진 장소를 이탈한다. 집안 이곳저곳에 쌓이는 머리카락을 보노라면 뭔지 모를 상실감이 몰려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꺼풀마저 조금씩 내려오고 있는지 눈동자는 더욱 작아 보인다.
한때 힘 좀 쓰던 치아는 점점 힘을 잃어가는 모양이다. 돌아가면서 여기저기 시큰 거린다. 인공치아가 자연치 수를 조만간 넘을 것이다. 이러다가 <사이보그>가 되는 건 아닐까? 아랫니 공사는 견딜만한데 고개를 최대치로 뒤로 젖혀야 하는 윗니작업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 건치를 가진 사람들은 행운아 들이다.
팔뚝은 점점 가늘어진다. 안방 출입문 틀에 철봉을 설치하고 생각날 때마다 매달려 보지만 턱걸이 개수만 점점 줄어 들뿐 결과가 신통치 않다. 어깨는 오른쪽이 조금 내려갔다. 몸이 전반적으로 약간 뒤틀린 기분이다. 정확한 대칭을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악화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새로운 과제를 선물 받은 셈이다.
허리 살은 유일하게 늘어가는 부위다. 그런다고는 들었지만 기분은 그렇다. 누가 그랬다. 나이 들면 허릿살이 어느 정도 있어야 좋다고. 그래야 아픈 경우가 발생했을 때 견디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아리송 하지만 듣기에는 괜찮다. 그렇다고 배불 뜨기 체형은 될 수 없지! 새롭게 전의를 다진다.
대퇴부 허벅지 근육은 참새 다리처럼 나날이 쭈그러든다. 샤워 후 거울에 비치는 연약한 모습이 민망스럽다. 가급적 안 보려 한다. 젊을 땐 바지 때문에 허벅지 피부가 쓸릴 정도로 나름 두툼했었는데 세월이 근육을 해체시켰다. '고장 난 로봇도 아닌데 억울하다.' 그래도 웃어야지 어떡하나. 자연의 섭리에 충실한 우등생인데.
근력 유지 운동을 꾸준히 하지만 세월 앞엔 속수무책이다. 무릎 관절은 약간 삐걱 거리지만 아직은 산책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종아리 근육은 그럭저럭 현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잠결에 종종 쥐가 난다. 새벽녘이면 증세가 나타날까 봐 두렵다. 운전 중에도 가끔 마비증상이 느껴져 걱정이다.
발가락 열 개가 눈에 들어온다. 양쪽 끝 깨끼(새끼) 발가락에 눈이 멈춘다. 가장 짠한 신체 부위다. 찌그러지고 뭉개졌다. 태어나서 신발을 신고 걷기 전까지는 예뻤을 것이다. 발과 발가락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평생에 걸쳐 누구보다도 많이 걸었다. 학교가 멀어 뛰고 달렸다. 겨울철에는 땔감을 위해 수 십리 길을 왕복했다. 군대에선 천리행군을 수차례 했다. 취미가 산행이라서 숱하게 오르내렸다.
발등은 하얗게 변하고 발바닥 역시 부드러워졌지만 '기형으로 변한 막내' 둘은 본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혼자 중얼거린다. '너희 둘이 내 인생의 이력을 대변하는구나!' 고생이 많았다. '이 몸이 다하는 날까지 서로 아끼고 보듬으면서 지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