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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Apr 26. 2024

송홧가루 흩날리며

<2>

( 출처 : 연합뉴스  / 산불로 타버린 소나무를 특수처리하여 공개한 모습  )


  소나무는 애국가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절개와 장수의 상징으로 꼽았다. "국민 나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정이품이라는 벼슬까지 받은 개체가 있으니 예부터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곳 근처에는 소나무가 많이 있다. 매년 4-5월 사이에는 초청하지 않았는데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니 다름 아닌 송홧가루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지내는 시기라서 불청객들의 일방적인 방문을 막을 방법이 없다. 오후가 되면 집기 위나 방바닥에 육안으로 판별이 가능할 정도로 노란빛을 띠는 가루가 뿌옇게 쌓인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집진통 벽에 상당량의 가루가 붙어있다.   

  

  인간 기준에서 바라보면 불편할 수도 있으나 소나무는 자연 질서에 따라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들은 씨방이 없어 꿀샘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나비나 벌에 의한 수분을 하는 게 아니고 바람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를 *풍매화라 분류하는데 은행이나 밤나무도 같은 부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송홧가루에 대해 우리는 어떤 인식을 하고 있을까?   

  

  분명하진 않지만 알레르기 성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봄철의 3대 불청객으로 황사, 오존, 꽃가루를 꼽는데 송홧가루도 이 중 하나에 해당되어 일부가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자료를 통해 확인 한 바에 의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유용한 면이 더 많아 보인다. 한약재의 원료가 되고 송진과 독을 제거 후 식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송홧가루의 진원지  / 끝분분이 암술이고 아랫부분이 수술인 자웅동체다. 시간이 흐르면서 솔씨를 가진 솔방울로 변한다)


  작년 이맘때쯤 소나무 군락지 옆을 지나다가 멋진 장관을 본 적이 있다. 국지적으로 비를 부르는 구름이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짙은 노란색 안개가 날리듯이 엄청난 양의 송홧가루가 하늘로 치솟았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내가 감동하며 쳐다보는 사이에 새 생명을 잉태하는 수분이 활발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이처럼 자기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되어 온다는 게 새삼 신비하게 느껴진다.   


  현실에서의 소나무는 고립무원 신세다.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이 경주 포항 일대에서 창궐 중이고 예방주사를 통한 방재는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르렀다고 슬픈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잦은 산불로 인해 불에 타 녹아내리는 일이 빈번하다. 거기다가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환경까지 우호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자연적인 *천이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아쉽기 그지없다.


  이러다가는 오뉴월에 생산되는 송홧가루 소금, 송이버섯, 전통목재 등이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 유감이지만 나 역시 할아버지 누워계신 산소 주변 소나무들에게는 예우를 갖출 수 없었다. 그들이 발산하는 독특한 물질로 인해 잔디가 부실하게 자라거나 생육 자체를 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거기 있었을 뿐인데 내 기준으로 유불리를 판단하여 박대한다는 게 유감스럽다.


  시골에서 자랄 적에는 집 부엌이 현대식 아궁이로 개량되지 않았던 관계로,  먼 길을 오가며 채취한 솔잎을 땔감으로 사용해서 밥을 지었고  난방을 했다. 불을 지피면 내뿜던 솔잎의 독특한 향기가 그립다. 그러나 장작처럼 지긋한 화력은 기대할 수 없다. 큰방 아랫목만 잠시 뜨끈했다가 새벽이 될라치면 등밑으로 밀려드는 한기 때문에, 어린 형제들은 자신들 턱밑으로  이불을 끌기 위한 전쟁을 벌이곤 했었다.


  송홧가루를 쓸어내면서 많은 상념이 떠오른다. 부디 꿋꿋하게 버텨내어 우리와 끝까지 동행했으면 한다.




* 풍매화(風媒花) : 씨를 키워내기 위해선 수분(受粉)이 필요한데 바람이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꽃이다.

* 천이 (遷移) : 옮기어 바뀐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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