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독자가 작가를 살려요
첫 단행본을 올해 출간했다.
아마 이 작품의 시작은 무료연재로 22년 5월 중순부터였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패기로만 덤빈
시작이었다.
그러나, 패기와는 달리 독자와는 데면데면이었다. 초반부엔 인사말도 없었고 코멘트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았다.
다른 작가님들에 비해, 뭔지 모를 쑥스러움에 혼자서 낯을 가렸던 것 같다.
얼굴도 안 보는 독자들에게 뭘 그리 가릴 것이 있다고 그랬는지 말이다.
다른 작가님들은 어찌하고 계시나, 한번 또 쓱 둘러보고 이후엔 짧게 한 줄 정도 '독자님들, 잘 보고 계시나요?' 라며 간략히 묻는 말을 적기 시작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잘 보고 있다며 꼭 완결을 부탁한다는 등
작고 소중한 댓글이 달리면서, 그 짧은 한마디들이 그렇게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주 2회 연재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기 시작할 때쯤 조금씩 더 많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그나마 초반 회차에 대한 무반응은 정신없이 넘겼지만, 20화를 넘어가면서 댓글이 조금씩 달리기 시작하는 걸 보곤 몇 개 달리지도 않은 것들을 매번 들어가서 다시 보고 또 보며 행복감에 젖었었다.
출간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옴싹옴싹 적기 시작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가 올린 글을 읽으면서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기긴 생겼다는 게 너무 소중했고 연재 중반까지는 '출간'을 하자던 목표는 잊은 채, 아주 소수였지만 내게 와준 고정독자들의 댓글을 보는 게 너무 좋아서 정말 연재일에 반드시 업로드를 하겠단 일념으로 참 열심히 달렸었다.
너무 즐거웠다. 엄청 힘든데, 그 힘듦을 잊을 만큼의 무언가 활력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얼굴도 모르는 소수의 독자들 덕분에 회사 옮기고 적응하기 힘들 때 따로 집중할 수 있는 게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도 독자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거구나 싶어서 회사 쉬는 시간 틈틈이도 쓰고 길 가다 생각나면 무조건 메모장을 켰다.
퇴근하고 나서도 바로 노트북 앞에 앉아 열두 시, 한시가 넘도록 글을 쓰기도 했고, 자기 전 누워서도 생각나면 적고 항상 무엇이든 대사 한 줄, 행동 하나든 떠오르는 대로 메모하는 것을 그걸 습관화 들이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난 독자들 덕분에 완결을 쳤다.
가끔, 힘든 일상이 버겁거나 또는 글이 잘 써지지 않고 쓰기 싫을 때.
지난 독자님들이 남겨두신 댓글을 열고 하나씩 쭉 읽어 내려간다.
물론 다 좋은 댓글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마저도 고맙게 느껴지는 지난 순간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시, 독자님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솟아나고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는다.
한 독자님은 별개로 만들어둔 작가 블로그를 찾아오셨다.
따로 공지를 안 해서 아무도 몰랐을 텐데, 아마 내 필명과 작품명을 검색해서 나름 수고스러움을 거치고 오셨을 테다. 그리고는 읽는 동안, 행복했다 하시면서 기프티콘을 선물로 두고 가셨다.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던 날.
이때가 아직도 기억나는 건 완결을 마치고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며칠을 정신이 없어서 블로그를 개설해 두고도 들여다보지 않다가 출간 공지를 올리려 접속했는 데 누군가 남겨놓은 인사에 온갖 스트레스가 한 번에 사라지고 그저 날아갈 듯이 좋았다.
아마, 나중에 선인세를 받았던 것보다 기쁨의 크기는 더 컸던 경험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꾹꾹 눌러 담아 써준 인사였다.
너무 좋은 글이었다, 재미있었다,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분에게 내 글이 읽혔다는 건 참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경험이었다. 다음 작품이 출간을 하게 된다면, 꼭 다시금 인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여전하다. 덕분에 정말 힘이 많이 되었다고. 그래서 또 열심히 머리 굴리며 쓰고 있다. 정말 정말 열심히 해서
이전보다 더 즐거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애초에 무료연재였고, 댓글을 달지 않아도 내 글은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잘 보고 가요.'정도라도, 간단히 남겨둔 말을 보며 작가가 받는 힘을 독자님들은 상상이나 하실까 모르겠다.
다정한 사람이 세상을 살린다는 말을 나는 격하게 믿는다.
그 작고 짧은 댓글들이 모여, 내가 만든 세상 하나를 끝까지 끌어갈 수 있게 하고, 결과를 보게 해 주셨다는 것.
얼굴도 사는 곳도 모르는 내 작고 소중한 독자님들, 넘치게 사랑합니다. 증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