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얼마만큼의 진심?
초등학교 때 친해지고 싶은 아이가 있었다.
갸름하고 예쁘장한 얼굴에 항상 긴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매끄러운 이마를 드러내곤 올려 묶던 그 애.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그 애와 친해지고 싶었다.
유일한 기억은 그 애에게 주기 위해 개구리 캐릭터가 그려진
지우개를 문구점에서 샀었던 것.
그리고 또, 무슨 노력을 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많이 소심하고 매사 적극적이지 못했던 난 관계에서 마저 매우 서툴렀다.
그래서, 결국 그 애와는 가까워지지 못했다.
지우개를 준다고 해서 나와 친하게 지내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고,
내 나름의 노력인들 했겠지만, 뭐 아마도 지금 떠올려본다면 그 애와 내가 가진 결이 달랐을 정도의 문제이려나. 그랬음에도 아마 한동안은 어린 마음에 그 애를 야속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건 결코 쉽지 않고,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공을 들여야 할 일인 걸 몰랐던 탓이다.
직장 생활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정해진 공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어림도 없다.
사람은 정말 다 달라서 여전히 관계에 서툴기만 한 나는 매번 삐걱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정한 포지션이라는 게 '적당히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친절하고 적의가 없는 누군가의 웃는 얼굴에 침 뱉기는 어려울 테니.
이제 시간이 흘러, 제법 때가 묻은 탓이거나 요령이 생긴 건지.
아직 애매하지만 조금은 덜 피곤한 사회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알 것도 같고 말이다.
지금의 내 진짜 속내를 들고나는 사적 영역의 관계는 어느 정도 굳어져가서 더 채울 일은 없을 테고, 이젠 관계 시작을 위해 엄하게 지우개를 사거나, 친분을 위해 굳이 절절매야만 하는 관계는 설정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웬만하면 적당히 친근하고 적당히 원만하되, 적당히 다정하려 노력해 보자. 하고 있다.
누군가는 내가 말하는 '적당함'이 서운하다 말하기도 하지만.
진심 100%가 아니라 한들, 뭐 어떠한가.
적당한 40이든 60이든, 내놓기로 한 만큼은 적어도 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