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는 벽치기다
하고 싶은 게 있지만 현실에 충실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중에는 나도 있다.
그러다 때로 그 일을 업 삼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나의 뒤늦은 지금을 위로라도 하듯
그 사람이 얼마나 그 일을 하며 괴롭고 괴로울지를 연거푸 떠올린다.(치사한 자기 위로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을 거라는 건 조금만 나이가 들어도 다 아는 사실이고.
그럼에도 밀려오는 아쉬움들은 그저 눈 가려 아웅 하고 마는 식이었다.
그러다 정말 큰 용기(보단 무모함)를 내서 순식간에 뛰어든 하고 싶던 그 일을 시작했는데.
나는 행복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일을 했다는 행위만이 남아 그저 초라하게 기억 속으로 사라지겠지. 라며
스스로를 수없이 의심했다.
'맨땅에 헤딩인가 이거?'라는 생각 말이다.
자신이 있어 시작한 일은 결코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내가 해도)될까?', '(내가 해도)되나?'
정말 눈뜨는 순간부터 하다 못해 화장실에 앉아있는 시간까지도 참, 더럽게 쓸데없는 자기 의심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였었다.
그럼에도 내 생애 어떤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포기보다는.
'아, 그냥 해!', '뭐 어때.', '어쩌라고.'
어차피 혼자 벌인 일, 나 혼자만 아는 결말이 되더라도 일단 마무리는 짓자, 가보자.라고 결심했고.
인간은 쉽게 변하지 못한 다는 걸 증명하듯 결심하고도 매 순간, 무섭고, 때려치우자 싶어 흔들리는 마음을 난 애써 다잡고 또 잡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뭔가 내 안에서 움트는 게 있었다, 정말 미미하지만 결과가 보이기 시작하고, 나름의 방법들을 스스로 찾아내며 힘든 건 당연했지만 지루하기만 하던 내 일상에 생각지도 못한 활력이 살아나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맨땅에 헤딩만 했다는 게 아니란 기쁨에 없던 용기가 다시 솟고, 더 가봐도 되겠다는 무모해도 좋을 자신감마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움직여 '행동'으로 얻은 (아주 아주 작은) 자신감은 정말 내게 오롯이 새겨져 남았다.
나이가 들 수록 경계심을 갖고, 넘어야 할 가장 큰 상대는 타인이 아니라 결국엔 '나'라는 말,
누구나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봄직한 흔한 이 말의 의미를 난 훌쩍 나이를 먹은 이제야 배운 것 같았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라며 어느 수상소감에서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 이게 오랫동안 닫혀있어서 당연히 벽인 줄 알았겠지만 사실 문이다. ]
그동안 해볼까? 싶던 모든 일의 시작점엔, 앞서 지레 겁먹고 미리미리 쓸데없이 부지런하게도 벽을 쌓는 내가 있었다. 근데 그 벽이라는 게 '와 씨, 무서웟!' 하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생각을 오만 핑계로 덮기 바빠 그마저 후다닥 대충 쌓아둔 거라 두껍지도 않다는 것이다, 아주 얇은 벽인데 그걸 살짝 밀어볼 생각도 안 했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 무언가를 얻지 않는다 해도 한 발 짝 먼저 내디뎠을 때 내가 가질 수 있는 경험의 무게가 내 인생에 어떤 면을 자극해 변화점을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만한 가치는 있다.
머릿속을 맴도는 무언가가 있다면 일단 그 목표점을 앞에 두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면
내가 겁먹고 쌓아둔 벽이 문이 되어 열릴 수도 있다.
지금의 난 여태 벽인 줄 알았던 그 문의 손잡이를 이제 막 잡아 열어 빼꼼히 내다본 수준에 못 미친다.
그래서 이 문을 열고 나간 앞으로의 내가 나를 온전히 믿어가며 작은 것들을 이뤄내면서 차차 달라질 앞으로의 삶이 궁금해졌고.
먼 미래라 해도 앞으로는 그 막연한 기다림에 어쩌면 사는 게 조금 더 즐거워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느닷없지만, 앞으로 내 취미는 벽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