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오면 이번엔 내가 먼저,
21년의 끝자락, 공공기관 유기 계약직으로 일했던 난 그곳에서의 업무를 나름(?) 잘 마무리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휴식에 들어갔었다. 말이 휴식이지 그동안 일하느라 가지 못했던 엄마 집이나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거나, 그냥 혼자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뭐 쓸데없이 늘어지게 자는 늦잠이나, 다시 게을러질 나를 마주하는 것이었을까.
1월은 마냥 좋았고, 2월은 붕 뜬 마음에 가려있던 여유를 되찾았다. 3월엔 슬슬 좀 심심하다 싶었고, 4월엔 아니! 왜 이렇게 살이 찐 거야. 하며 거울 속 불어난 몸을 보며 섬뜩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즈음엔 사람인이며 잡코리아를 다시 훑기 시작했고, 백수였지만 쓰는 카드값과 매달 내야 할 대출금을 감당해야 했기에 쿠팡 아르바이트를 나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새벽부터 몸을 움직이고 버스를 타고 사람들과 섞이기 시작하니 이제 그만 자빠져있고 다시 세상밖으로 나가야겠다란 결심이 더욱 짙어졌다.
다시 직장을 얻는 건 쉽지 않았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이력서를 넣었다.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어우씨, 아슬아슬한데 싶게 갖고 있던 여윳돈이 다 떨어져 갈 때쯤.
22년 6월, 난 또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첫 출근일을 앞두고선 안심 반, 불안함 반을 여전히 안은 채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본래의 난 낯을 많이 가리고, 소심하고 내성적이지만 의외로 새로운 곳에서의 나는 적응을 잘하고 사람들과도 문제없이 관계를 이어가며 퇴사를 하고 나서도 오랜 기간 알고 지낼 만큼 잘 지내는 편이다.
동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네가 잘해서, 열심히 하는 게 예뻐서.라고는 하지만 겸손한 척 잘하는 나는 에이 설마요! 하면서 손을 내젓는다. 그러나 더 솔직히 말해 바꿔 생각하면 그건 다 그렇게 말해주던 그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었고, 잘하려 노력했던 거였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디선가 짧게 읽은 SNS 글귀에서 말하길, 잘 모르는 이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우수한 지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난 그 말을 믿는다. 눈에 보이는 학력이나 그런 것을 기준으로 두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살아오며 체득해 쌓여 자연스레 표출되는 인성의 지능 수준을 믿고 싶은 거다.
그걸 보자마자 내가 지나오며 만난 동료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그러했다.
두리번 대던 나를 알아봐 주고 먼저 인사를 건네고, 버거워하면 스스럼없이 힘을 보탰다.
밥을 함께 먹으면 편했고, 술잔을 기울이면 더욱 즐거웠다.
친절하고 다정하며, 배려할 줄 아는 이들이 있어서,
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활동도 그들과 함께 하면 즐겁단 착각마저 들게 했다.
함께 일을 할 때처럼 매일, 자주 연락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일상이 무탈하기를 조심스레 응원한다. 나이, 성별을 떠나 그런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던 지난 시간들을 나는 언제나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렇듯 새삼 소중함을 느낄 때가 있어서 지금은 생각만으로 끝이 아닌,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 같다.
난 지금 직장을 잘 다니고는 있지만, 앞으로 또 다른 곳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또는 막연하지만 언젠가 내가 꿈꾸는 프리랜서를 하게 되더라도 함께 일하게 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이번엔 내가 먼저, 친절하게 다정히 웃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