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한 조각 기억
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하는 것일까?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별일 없으면 연락을 하지 않는 거 같다. 어쩌면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보다 너무 덜 연락을 취하는 거 같다. 가족은 그런 것인가? 그래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오고 위로를 해주는 존재이다
친척 오빠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나이차이는 한참 오빠로, 오빠가 집에 온다고 하면 기다리는 그런 오빠였다.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오빠표 오므라이스가 너무나 생각이 난다. 오빠가 해준 오므라이스만 먹고 어디서도 오므라이스를 먹어도 그 맛이 안 나서 늘 오빠표 오므라이스를 기다렸었다. 그리곤 맛있는 밥을 해주고 브루마블 게임도 늦도록 같이 해주고 나이차이는 많이 나지만 늘 앞장서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놀아주던 멋진 오빠였다.
그로곤 한동안 오빠를 못 보다가, 오빠의 늦은 결혼식, 너무 이쁜 언니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켜주었고, 오빠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모범택시까지 운전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아주 멋진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 이후로 자취한 곳과 오빠의 집이 가까워서 가끔 맛있는 회나 술이 생각나면 오빠에게 연락을 해서 자주 가곤 했다 그렇게 오빠와 난 술친구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무척 친하게 지냈고, 이후는 서로 바빠서 연락만 하고 살았었다.
남동생이 먼저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친가 쪽에서 청첩장에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현재의 아버지 성함이 올라가 있는 것에 실망을 하여 성이 다른 결혼식에 못 가겠다고 하시면서 으름장을 놓으셨다. 이때 우리의 사정을 듣고 친척오빠가 제일 앞장서서 이게 무슨 일이냐며 어른들을 설득시켜서 모두들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어린 동생이 어느새 같이 나이가 들어서 술잔을 부딪히면서 세월 참 빠르다는 이야기를 오빠는 자주 했었다. 오빠의 집에 가서 푹 숙면을 취한 방에서 무언가 이상한 약을 하나 발견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약일까? 영어로 쓰여 있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서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찾아보니 암환자가 먹는 일종의 진통제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오빠는 이제 40대 중후반인데 너무 당황스러웠고, 동새에게 이야기를 하여 상황정황에 대하여 알아보게 되었는데 오빠가 간암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버지도 큰아버지들도 이제 친척오빠까지 이렇게 되다니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오빠는 본인이 치료를 잘하고 있다고 꿋꿋하게 버티고 버티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서 바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친척들도 병문안을 오면서 어쩌면 마지막을 모두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오빠에게 간 날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서 오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오빠가 다리건강하고 다닐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고 즐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쯤인 거 같다. 관광 가이드로 주말 투잡을 하면서 가이드하면서 다닌곳도 이야기해 주었을 때 해맑게 웃던 얼굴 모습이 또렷하다. 급한 고모의 전화 한 통으로 다시 병원에 갔다. 이제 병원에서도 마지막인사만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새언니는 그동안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힘들게 가려는 오빠에게 고생했다. 고생했어, 사랑한다. 행복했다고 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가면서 오빠의 손을 놓지 못했다.
나와 두 고모 역시 그 곁에서 마지막을 지키고 이후 장례식까지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록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렇게 착한 언니를 두고 가는 오빠에게 아직은 어린 내가 무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생각해 보면 30대였는데도 그 흔한 위로를 못하고 같이 손을 붙잡고 울으면서 그냥 곁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빠를 보내고 한참 후에도 언니와 우리 가족들은 계속 인연을 이어가면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만 연락을 하는 거 같다. 세월이 무심하게도 너무 많이 흘러가고 어느새 오빠 말처럼 많이 즐기다가 늦게 결혼도 했는데 그 모습을 못 보여준 것이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결혼식에 언니가 와서 크게 애기씨라고 불렀을 때파노라마처럼 스치듯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언니한테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을 한지 벌써 꽤 시간이 흘렀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연락도 잘 안 하고 그랬는지 앞으로는 연락도 자주 하면서 언니의 안부도 묻고 그리고 잠시 잊었던 오빠도 생각하고 그리고 그동안 잊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된 언니가 나를 부르는 말 한마디 애씨라는 다정한 모습을 기억하면서 늘 삶에 감사해야겠다. 잠시 잊었던 추억의 조각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다시 찾게 되는 그리운 오빠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