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변하지 않는 우리 우정
2026년 월드컵은 캐나다, 멕시코, 미국에서 사상 최초 3개국 공동으로 열린다. 대한민국이 들썩였던 2002년 한. 일 월드컵 이후 24년 만의 공동 개최이자, 월드컵 역사에 남을 새로운 기록이다.
이 소식을 들으니, 문득 1994년 미국 월드컵이 떠올랐다. 나와 친구가 처음 월드컵에 빠져 들었던 그 여름, 그리고 황선홍 선수에 반했던 순간으로 기억을 더듬어서 그날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시험을 본 기간이었다. 학교가 일찍 끝난 어느 날, 미국 월드컵의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가 뛰는 경기를 보던 우리는 순식간에 그 모습에 팬이 되었다. 멋진 플레이와 환한 미소는 여고생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학교도 일찍 끝나서 사실 학원을 가야 했지만, 우리는 선수들이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난생처음으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손에는 일회용 카메라를 소중하게 들고 황선홍 선수를 본다는 그 설렘에 가는 길이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공항은 처음이라서 모든 것이 나설었다. 우리는 국제선과 국내선 차이도 몰랐다. 국내선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공항 직원에게 " 선수들이 어디서 오나"라고 물었더니,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니까 국제선으로 가야 델 텐데요"라고 했고, 나는 아주 당당히 말했다. "아니에요, LA에서 온다고 했어요" 그 순간 직원의 황당한 그 표정과 친구의 어이없이 쳐다본 그 당시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LA와 로스앤젤레스가 같은 곳인지 몰랐는지 참 웃긴 상황이었다
다행히 공항 간 셔틀버스는 무료였는데, 이때도 우리들은 돈 한 푼 없이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왔는지 회수권 하나 들고 버스비를 현금으로 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발을 동동 거리던 것이 생각이 난다. 무료인 셔틀버스를 타고 부랴 부랴 국제선으로 이동을 했다. 잠시 후 하얀색 멋진 양복을 입은 선수들이 도착장에 나타났다.
우리는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렀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반사광과 인파 속에서 제대로 나온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그 이후로 우린 월드컵만 열리면 늘 이날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그 당시로 돌아간 듯 깔깔 웃게 되었다
그날 외국 방송국도 취재를 나와 있었다. 교복을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여고생이라서인지 인터뷰 제안을 받았는데, 어설픈 영어를 하는 것을 보니 영어권 나라는 아니구나를 짐작했다. 그 옆에 통역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첫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카메라 필름이 끊겨 인터뷰는 무산되었다.
그 여름 이후 우리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뿐 아니라 수많은 축구 경기를 함께 이곳저곳에서 응원을 했다. 1998년, 그리고 대망의 2002년 광화문에서 "대~한민국"을 외쳤던 순간까지. 황선홍 선수와 많은 선수들의 성장과 활약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우리만의 축구 역사와 우정을 쌓았다
이제 우리의 대화 주제는 부모님, 건강, 노후로 바뀌었지만, 4년마다 우리는 다시 여고생 시절로 덕분에 돌아간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새로운 약속을 했다. 매달 5만 원씩 적금을 넣어, 언젠가 월드컵이 열리는 현장에서 직접 응원을 하기로 했다. 물론, 그날이 언제가 도리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는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고 , 함께라면 그 열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것. 1994년의 여름의 설렘을 가슴에 품고, 2025년 여름을 멋지게 버티면서 다음 월드컵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