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모락 우리는 버티는 중이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둥글어졌다

2026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우리 가족의 시간은 병원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저마다의 이유로 병원에 오가며 '건강'이라는 단어를 다시 마주하게 된 시간이었다.


엄마는 12월 말, 차에서 내려오다 넘어지셨다. 단순한 낙상일 거라 생각했지만 정형외과에서는 오른쪽 무릎 슬개골 골절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결국 무릎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연세가 드신 부모님들은 이제 한 번 넘어지는 일이 곧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제야 실감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 앞에서 온 가족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새해를 맞이하며 계획했던 평범한 일상은 그렇게 병원생활로 바뀌었다.


엄마의 수술과 입원을 지켜보며 마음을 다잡으려던 찰나, 그동안 미뤄두었던 나의 건강 검질 결과가 이어졌다. 대장내시경에서 용종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고지혈증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관리를 소홀히 해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는 나 역시 건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부인과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다. 2년에 한 번씩 해오던 건강검진이었지만, 이번 결과는 달랐다. 자궁근종 크기가 크고 변형된 모습이어서 여러 병원을 다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대학병원을 권유했고, 예약을 기다리는 동안 조금 더 큰 산부인과를 찾아 다시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자궁적출과 근종 제거 후 조직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빠른 수술을 권유받았다. 급하게 수술 날짜까지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워졌다.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상황을 알렸다. 괜히 걱정을 안긴 건 아닐까 마음은 쓰였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조언을 해주었다. 결국 병원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을 더 알아보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소개받은 병원고 대학병원 예약을 차례로 잡았다.


수원에 있는 두 번째 병원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호르몬 주사를 맞고 4주 뒤 크기가 줄어들면 복강경 수술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기분이란 말이 딱 맞았다. 희망이 보아는 이야기 하나에 마음은 다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물론 주사를 맞은 후에는 커피와 술을 모두 끊어야 했다.

술은 참을 수 있었지만,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을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몸이 나아진 뒤 더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달래며 받아 들었다.


가족들에게는 가장 마지막에 이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엄마가 퇴원하던 날, 퇴원 수속과 보험 처리를 마치고 출출한 마음에 시장에서 만두를 사 먹었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만두를 기다리는 동안, 만두 가게에서 일하시는 상인분이 말을 건네셨다.

" 엄마 퇴원하시나 보네? 나도 남편이 그 병원에 있어서 옆에서 지켜봤어, 힘들었지?"

그분은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이야기해 주셨다. 가족이 아플 때 가장 힘든 사람은 곁에 있는 가족이라는 말, 화내지 않으려 다짐을 하면서도 결국 화를 내고 후회하게 디는 마음 '계신 때 잘해야지' 다짐을 하면서 지치는 현실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는 마치 내 아믕르 그대로 들여다본 거 같았다.


나 역시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다짐했다. 화내지 말자, 잘해 드리자, 하지만 어느 순간 소리를 지르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아버지도, 남동생도, 올케도, 남편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모드 같은 마음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 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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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원 겨울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만두는 서로 다른 속재료를 둥글게 감싸 안고 있었다. 고기, 김치, 당면, 두부처럼 제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로 어우러져 따뜻한 만두가 되는 것처럼, 우리 가족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감싸며 이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위로해 주는 가족들 지인들, 그리고 스쳐 지나간 시장 상인분까지.

따뜻한 만두처럼 그 온기가 마음속까지 전해졌다. 이 순간 역시 지나갈 것이라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나의 새해는 구정 이후"라고 되뇌며, 앞으로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이 시간은 분명 나와 엄마의 건강을 다시 챙기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희망을 붙잡아 본다.

우리는 이렇게 모락모락 이 시간을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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