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림 선생님 뭐 어때요. 괜찮아요.
살다보면 그런 콘텐츠들이 있다. 그저그런 콘텐츠들의 홍수 속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콘텐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계속 떠들게 만드는 콘텐츠. 비쥬얼스 프롬의 정진수 감독가 만든 프라이머리의 공드리 뮤비를 봤을 때, Behind The Scene의 이래경 감독이 만든 선우정아의 순이 뮤비를 봤을 때, 콧수염 필름즈의 이상덕 감독이 만든 선우정아의 봄처녀 뮤비를 봤을 때, 호빈 감독이 만든 팬시차일드의 파라다이스 뮤비를 봤을 때, 오지원 감독의 고열과 스컬프쳐 필름을 봤을 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콘텐츠들이 있다.
학부생때는 그런 콘텐츠를 보는 일이 꽤 많았다. 작가와 감독들로 즐겨찾기 목록은 마를 일이 없었고, 그들의 행적을 살피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는데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비슷한 충격을 받는 일이 확연히 적어졌다. 한가로이 레퍼런스를 스크리닝할 여유가 없어진 것도 한 몫하겠지만 눈에 띄는 신예들이 몇 없었다.
그러던 중 영화 '유월'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유튜브 알고리즘아 고마워!) 영화 유월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재학중인 BEFF 감독의 영화과 예술사 졸업작품워크샵 작품이다. 영상의 제목은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기묘한 일' (유튜브용 제목도 너무 잘지었고..) 본래 영화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는 예술인데, 내가 느끼기에 유월은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자유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한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고 춤추는 소년 유월로부터 줌아웃되며 시작한다. 질서에 목매는 담임선생님 혜민은 그런 유월이 영 못마땅하다. 그러다 초등학교 내에 집단무용증이 발발하게 되고, 이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된 유월은 혜민과 동료선생님들에게 추격당하는데 댄스 바이러스는 점점 퍼져 전국으로 확산된다.
유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연출이나 스토리만 언급했지만 촬영도, 조명도, 배우도 어느하나 빠짐없이 좋다. 카메라 워킹이 동작을 자연스레 담아낸다. 미술도 센스있다. 가령 혜림이 유월을 혼낼 때 보이는 게시판의 '서로 사랑해요'같은 (ㅋㅋ)
질서와 학생다움을 요구하는 담임선생 혜민, 영화에서 춤은 꿈을 상징한다. 혜민의 서랍장 속 토슈즈가 혜민에게도 숨겨둔 꿈이 있음을 암시한다. 극 초반 유월과 혜민은 하품을 크게 하는데, 혜민은 하품하는 유월을 꾸중짖다. 아이들이 볼 수 없도록 문뒤에서 창을 두드리며 몰래 크게 하품을 한다. 꿈도 하품과 같다.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이 자연스레 발현하는 것. 그래도 이상하지 않은 것. (혜민이 하품을 하는 장면은 복선 같기도 하다.)
갑자기 아이들이 좀비처럼 춤을 춘다. 이상하고 어색하게 몸을 빼앗긴듯이 삐걱댄다. 그 사이를 신나게 활보하는 유월. 자유로운 유월이와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이 대비된다.
유월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선생님들이 집단 무용증에 걸리게 되면서 춤추는 시퀀스가 나오는데 화단씬이 정말 좋았다. 심현서 배우 눈빛이 정말 다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패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추격당하는 유월이는 가는 곳마다 집단 무용증을 일으키는데 중간중간 생기는 에피소드들도 의외성을 띄고 있어 눈에 즐거움을 준다. 포크레인이 있는 공사장이라던가.
유튜브 촬영 중인 세트장이라던가. 이 장면의 텝댄스도 참 좋았다.
서랍장 속 토슈즈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혜림 선생님에게 유월은 다가가서 선생님 뭐 어때요. 괜찮아요. 라는 대사를 건넨다. 그리고 함께 춤을 추는 혜림과 유월
모두가 무용증에 걸려있을 때 왜 혜림만 멀쩡할까? 처음에는 혜림의 질서, 즉 안정적인 현실에 대한 완고한 의지때문에 걸리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했다.(최종 보스 느낌으로) 하지만 5번정도 보고 나니, 책상 위에 가만히 놓여있던, 서랍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던, 토슈즈가 눈에 띄었다. 어쩌면 혜림은 유월과 같은 사람이라서 감염되지 않았던게 아닐까? 꿈을 지니고 있던 사람
고장난 좀비처럼 삐걱이던 아이들은 혜림의 손이 닿자 자연스럽게 춤추기 시작한다. 스카이캐슬에서도 아이들은 춤추고, 헬조선에서도 아이들은 뛰논다. 타이틀에서 표현한 라라랜드는 그 형식의 유사성때문이기도 하지만 둘 다 꿈을 조명하고 있는 영화란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마지막 쯤에 나오는 '꿈을 키워요'라는 게시판 앞에서 아이들이 단체로 춤출 때 관객은 신선하고 기분좋은 쾌감을 받는다. 꿈을 키워야 할 학교에서는 지금 무엇이 우선시되어 자라나고 있는걸까. 능동적인 자라난다는 말보다는 수동적인 길러진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당연 해야할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교육환경에 기분좋은 일침을 가하는 영화 유월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