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다면 구원은 온다, 결코 몰랐던 방식으로
점점 더 진화하는 플레이리스트의 신작 'XX'
유튜브 피드를 내리다가 익숙한 얼굴에 손이 멈췄다. 익숙한 얼굴에 익숙한 로고. 유명 웹드라마 제작사 플레이리스트와 안희연이 만났다. 티져 포스터부터 강렬하게 뽑은 이 드라마의 제목도 'XX'다. 서브 카피에도 '복수'가 들어간걸 보니 자연스레 제목은 욕설로 읽히는 듯하다. 형식은 웹드라마, 채널은 유튜브. 제목도 욕설을 가린듯한 'XX'라니 막장 복수극이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XX'는 연대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XX는 처음에 언뜻 보면 복수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되기 쉽상이다. 5년 전 절친이었던 이루미와 윤나나는 일련의 사건으로 사이가 틀어진다. 그렇게 5년후 둘은 바텐더와 사장님으로 재회하게 되며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다. 시놉시스만 보면 남자 때문에 울고 불고하는 막장 복수극 같지만, 다행히도 2020년 시의적 흐름을 잘 읽은 플레이리스트는 그런 멍청한 서사는 담지 않는다. XX는 완벽하지 않지만, 악마도 아닌 여자들이 모여 각자의 트라우마를 깨부수는 이야기다.
윤나나와 이루미는 서로 다른 트라우마와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극은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시작하고, 트라우마를 박살내는 것으로 끝난다. 그 과정에서 무너졌던 연대는 단단해진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충분히 고뇌하고, 아파한다. 하지만 거기서 무너지거나 사랑에 도망치지 않고 본인의 두 발로 문제를 마주한다. 가끔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면서 서로를 이해한다.
극 안에서 여자들은 좌절하고, 낙담하지만 시련을 발판 삼아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연대한다. 극중 악역은 여자들의 연대를 새로이 쌓아올릴 장치로 소비된다. 공동의 적을 함께 해치워나갈 때 연대는 점점 강해지며, 두 사람의 비틀린 관계도 서서히 명확해진다. 문제는 모습을 명확히 드러낸 후에야 해결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이 연대하며 트라우마를 하나 하나씩 이겨낼 때 서사에서 오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관객이 콘텐츠에서 쾌감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좋은 대본에 좋은 연출과 좋은 배우들이 함께해서 가능한 일이다.
플레이리스트가 이런 서사를 다룬 건 XX가 처음이 아니다. 웹드라마로 역대급 조회수를 기록한 '에이틴' , '다시만난 너' 역시 비슷한 서사를 가진다. 앞서 언급한 웹드라마 세계관 안에서 여자들은 가끔 실수하고 낙담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있지 않는다. 순정만화 여주인공처럼 멍청하게 웃고만 있지 않는다. 욕심을 내고, 성장한다.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투쟁한다. 그런 플레이리스트 여성서사 맥을 잇는 XX는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선 10대물들보다는 매운맛이다. MBC와 콜라보하는 만큼 연출이나 촬영의 퀄리티 역시 압도적이다. 기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캐릭터 빌드업이나 서사 역시 탄탄하다. 각양각색의 뚜렷한 캐릭터들이 일관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기술적, 서사적 구성이 탄탄하니 극은 순탄하게 굴러간다. 감독과 작가의 영민함이 느껴지는 결과물이다.
친애하는 나의 XX
극은 문이 활짝 열린 채 막을 내렸다. 윤나나와 이루미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테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독한 감기를 앓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문제 없다. 독한 감기를 앓은만큼 단단해져서 흔들리지 않을테니까. 앞으로 살아가며 두 사람이 갈등을 겪고 균열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XX에서 겪었던 감기를 양분 삼아 잘 헤쳐나갈 것이다. 극을 벗어난 두 사람의 우정과 미래를 기대하고,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 가장 명장면을 꼽자면, 윤나나가 이루미 손을 잡고 로비로 빠져나오는 장면과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눈으로 대화하는 장면. 원래 그들이 서로를 바라봤을 눈동자와 표정으로 말없이 대화하며 엔딩크레딧은 올라간다. 두 장면을 보고 구원과 연대라는 키워드가 떠올랐고, 아주 잘 만든 웹드라마에 의미있는 서사가 나와서 소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