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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진 손을 맞잡고 걸어간다 (2부)

여행의 시작

by 김군

여행의 설렘은 미처 일어나지 않은 시간의 기대감에서 시작된다. 차곡차곡 채워질 가방 속 추억을 담아보자 하는 마음에 캐리어 속 이것저것 넣는다. 아침이 밝아 왔고 나는 KTX를 타고 나의 영원한 운명의 실타래를 만나기 위해 떠났다.


오랜만에 돌아온 공간에서는 여전히 정겨움의 어머니의 내음새가 느껴진다. 공교롭게 여행 시작의 순간이 나의 생일이었고 따뜻하게 데워둔 미역국을 아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한 숟가락의 온기가 목구멍을 넘어가며 내게 미소가 되었다. 눈을 마주하며 애써 표현하지 못한 고마운 감정을 전해본다.



처음이었고 사실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들에만 익숙한 그녀가 떠남에 낯섦에 우왕좌왕할 때 곁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미숙하지만 여행의 짐을 정리를 마무리해주었다. 재깍재깍 시계 추가 흘러갔고 우리는 떠나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갔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도착하였다. 약간의 출출함에 주전부리를 먹을 곳을 찾아보았다. 선택에 있어서 주저하는 건 유전인 건지 그녀도 선뜻 메뉴를 정하지 못하였다. 매장 문 앞을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며 결국 고른 것은 호두과자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감싸진 종이 껍질을 벗기면서 한 입 한입 베어 물었다. 퍽퍽한 빵과 배분이 적절하지 않은 앙금에 아쉬움이 들었지만 허기를 채우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배고픔이 시간이 지나버린 공허한 시간 속에서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여야 이 여행의 의미를 지킬 수 있을까로 채워졌다. 학창 시절 마주한 수많은 시험지들보다 더 어려운 난제였다.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뭔가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하고 주저하게 만들었다. 결국 망상만 하다가 탑승시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엄마의 손을 잡고 게이트 안을 걸어 들어갔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고 왠지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졌다. 우리는 서로의 어색한 모습을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활주로를 내달려 비행기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익숙한 공간에서 이별을 고하는 것이 실감이 났다. 창가 자리가 탐이 났지만 나보다 더 비행기 밖 전경을 아이처럼 보는 그녀의 모습에 차마 욕심을 내지 못하였다. 한참을 헤엄치듯 구름 사이를 뚫고 지나친 비행기가 에메랄드 빛 바다와 장난감 같은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찰칵 찰칵 휴대폰 카메라를 창문에 기대어 찍는 모습이 귀여웠다. 찍은 사진 들 중 어떤 것을 카톡 프로필로 할지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다시 땅을 마주한 비행기는 덜컹덜컹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주로를 가로질러 멈춰 섰다. 여행의 한 페이지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수화물을 찾는 곳에서 캐리어를 가지고 문 앞으로 간다. 누군가를 환영하는 인파들 속에서 왠지 나는 엄마와의 여행을 축복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시간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제주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간직해보려 한다. 그리고 선물을 해주려 한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하는 순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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